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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칼럼] 섬기는 사람이 더 많았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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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우리 교회에서 유치부와 아동부 성경학교가 열렸습니다. 부모님들이 말씀과 게임과 먹을거리를 준비하셨고, 중고등부 형과 누나들이 선생님이 되어 동생들을 섬겼습니다. 정작 성경학교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네 명뿐인데, 그 아이들을 섬기기 위해 모인 사람은 그보다 세 배나 많았습니다. 계산으로만 보면 효율이 나오지 않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비효율 속에서 저는 하나님 나라의 셈법을 봅니다. 특별히 중고등부 친구들이 자신의 귀한 여름방학 시간을 내어 동생들을 섬겨준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한창 친구들과 놀고 싶고, 쉬고 싶은 나이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기꺼이 내려놓고 어린 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웃어주고, 손잡아주고, 함께 뛰어준 모습은 세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세상은 자기 시간을 지키라고 가르치지만, 교회는 그 시간을 나누어주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그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숫자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라 사랑으로 채워지는 곳입니다. 네 명의 아이를 위해 열 명 넘는 사람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것, 그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입니다.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은 결코 손해 보는 셈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이 섬김이 세대를 넘어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섬기고, 그 자녀 세대의 형과 누나들이 또 그 아래 동생들을 섬겼습니다. 받은 사랑이 다음 사람에게 흘러가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신앙이 대를 이어 전수되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 아닐까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사랑으로 섬길 때, 그 안에서 다음 세대는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 세대가 자라 또 다음 세대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 교회에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이번 여름, 귀한 시간을 내어 섬겨준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과, 정성으로 준비해주신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네 명의 아이들 안에서, 그리고 그 아이들을 섬긴 손길들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자라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씨앗칼럼] 여름 수련회, 작은 씨앗들이 자라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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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수련회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 역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때, 수련회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수련회를 준비합니다. 수련회 장소는 많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잠자리, 낯선 사람들, 식사 등등 여러모로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바로 핸드폰과의 단절입니다. 그럼에도 이 자리가 너무나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련회를 기대함으로 준비하면 너무 좋겠지만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시작한 수련회를 통해서 아이들이 좋은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조금씩 수련회를 향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가 돌아오면 어디로 갈지 궁금해합니다. 이번 중·고등부 수련회도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영적인 경험들을 하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아이들을 부르시고 주님을 만나는 자리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합니다. 그분은 반드시 우리의 자녀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 가실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유치부와 아동부 수련회는 부모님들이 말씀과 활동, 식사를 준비하고, 중·고등부 학생들이 함께 섬기며 진행합니다. 세대가 함께 다음 세대를 세워 가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신앙은 저절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섬기며, 함께 기도하는 삶을 통해 전해집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말을 듣기보다 우리의 삶을 먼저 봅니다. 그래서 부모의 믿음, 교회의 사랑, 선배들의 섬김이 아이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평생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기초를 세우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작은 씨앗들을 아름답게 자라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씨앗칼럼] 8년 만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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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교회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도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가정에서 조용히 시작된 예배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금 이곳까지 왔습니다.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 저희를 향한 시선은 따뜻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낯선 교회,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였겠지요. 그럼에도 저희는 그 시선 속에서 동네 분들을 섬기고, 이 땅에 구원받는 영혼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차가웠던 시선은 어느새 사랑의 눈길로 바뀌었습니다. 손수 농사지으신 감자와 야채, 쌀을 나눠주시는 이웃이 되어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늘 작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는 정은 깊어졌지만, 구원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허리를 다치셔서 걸음이 자유롭지 못하신 한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저희는 그분을 찾아가 필요한 것을 채워드리고, 곁에 함께 있어 드렸습니다. 찾아갈 때마다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발걸음을 거듭하는 사이, 굳게 닫혀 있던 그분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주, 그 가정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8년이라는 시간. 짧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늦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정확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하나도 흘려버리지 않으시고 가장 좋은 때에 이루어 가십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도 오래도록 품고 기도해 온 이름이 있습니까? 아직 열리지 않은 문 앞에서 지쳐 계십니까? 8년을 기다려 열린 이 문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할 일은 그 응답의 시간표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도 씨앗교회는 이 마을을 품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작은 순종과 섬김의 걸음들이 ...

[씨앗칼럼] 바라봄이 만드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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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개인의 삶도 그렇고, 우리 씨앗교회의 걸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문제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 문제 앞에서 무엇을 계속 바라보고 되새기느냐,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많은 분들이 어려운 일을 만나면 자꾸만 그 문제를 곱씹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왜 나는 자꾸 넘어질까?’, ‘왜 우리 교회는 더디게 자랄까?’ 하고 같은 생각을 반복하며 마음이 지쳐갑니다. 저도 목회를 하며 그런 밤들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문제를 묵상하라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여호수아가 이 말씀을 받을 때, 그의 앞에는 광야가 아니라 거대한 요단강과 가나안의 강한 민족들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없어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문제를 묵상하면 그 자리에서 두려움이 자라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믿음이 자라납니다. 결국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며 무엇을 되새기고 있느냐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은 불평의 말을 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은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잠시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문제를 되새기고 계셨다면, 오늘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약속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길을 평탄하게 하시고,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씨앗칼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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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열등의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열등의식은 그냥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언제나 '비교'라는 씨앗에서 자라납니다. 누군가와 나를 견주는 순간, 그 마음은 이미 싹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열등의식과 싸우려 애쓰기보다, 비교하는 마음 자체를 내려놓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내려놓는 가장 좋은 길은, 나와 이웃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온 우주에 하나뿐인 존재로 여기십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렇게 귀한 존재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하나님께 죄송해서라도 더는 나를 함부로 낮출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 손에 온전히 맡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이루도록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다만 그 길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른 이의 삶을 어떻게 빚어 가시는지는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의지하며, 내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가면 됩니다. 누가 성공했고 누가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지는 세상이 판단할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아실 일입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삶을 하나님은 전혀 다르게 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판단은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심판하실 그 날을 바라보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런 습관이 하루아침에 몸에 배지는 않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젠가 열등의식이 사라질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감사함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실천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나를 부럽게 만들고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그 사람을, 오히려 마음먹고 축하해 보십시오. 따뜻한 말 한마디, 짧은 축하의 글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이 정말 잘되기를 바...

[씨앗칼럼] 함께 세워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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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교회를 세워가면서 제 마음에 계속 붙들고 있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완성하시기로 정하신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도록, 하나님은 목회자를 세우셨습니다. 목회자의 자리는 권위나 특권을 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방향성을 붙들고, 그 말씀을 따라 함께 걸어가도록 세워진 자리입니다. 저 역시 완벽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흔들리고 부족한지 저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그럼에도 제가 요즘 우리 씨앗 가족들에게 꼭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편지를 쓰듯 이 글을 씁니다. 교회가 바르게 세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마음을 같이하여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기서 순종이라는 말이 무겁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순종은, 누군가를 억지로 따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조금 내려놓고 공동체의 리더가 제시하는 방향을 믿고 함께 걸어가 보자는 부탁입니다. 집을 지을 때도 그렇습니다. 설계도를 보는 사람과 벽돌을 쌓는 사람의 생각이 매번 다르면 집은 완성되지 못합니다. 각자 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한 사람의 방향을 믿고 손을 맞춰야 비로소 집 한 채가 세워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좋은 생각과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따로따로 펼치기보다, 지금 이 공동체를 이끌어 가시는 방향에 마음을 맞추어 주시면, 씨앗교회는 훨씬 더 든든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같은 모양일 필요는 없습니다. 각 교회에는 그 교회의 리더를 통해 주시는 고유한 방향성과 색깔이 있습니다. 씨앗교회에도 씨앗교회만의 색깔이 있고, 그것은 우리가 함께 마음을 맞추어 걸어갈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속한 이 공동체의 리더를 인정하고 따라주시는 것이 무엇보다 중...

[씨앗칼럼] 두 갈래 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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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내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아리산을 오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내도 저도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라, 등산이라기보다는 산보하기 좋은 낮은 산을 찾아 걸었습니다. 함께 걸으며 산이 내어주는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도 몸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길을 걷다 보니 경사가 급한 지점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쪽은 짧지만 경사가 가파른 길이었고, 다른 한쪽은 조금 더 길지만 완만하게 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골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가파르지만 빠른 길을, 또 어떤 이는 완만하지만 돌아가는 길을 택하면서 말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런 선택 앞에 놓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나온 제 인생을 돌아보니, 젊음이 한창 왕성하던 때에는 빠르고 가파른 길을 택해 숨 가쁘게 달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정말 좋은 길이라 여기며 그 길을 골랐던 것이지요. 그런데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고 보니, 조금은 돌아가는 길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생각하면서 내딛는 걸음도 참 좋다는 마음이 듭니다. 신앙의 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빠르게 자라고, 빠르게 응답받고,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합니다. 가파른 길이라도 빠르기만 하면 좋은 길이라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완만한 길로, 조금 돌아가는 길로 이끄십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곁에 계신 주님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고, 함께 걷는 지체들을 살피게 되며, 그동안 지나쳐 온 은혜들을 천천히 곱씹게 됩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기까지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빠르게 솟아오른 씨앗이 늘 튼튼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디게, 그러나 깊이 뿌리를 내린 씨앗이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빠른 길이 늘 좋은 길은 아니며, 돌아가는 길이 결코 뒤처지는...

[씨앗칼럼] 사랑하며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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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살면서 많은 것들을 이루고 싶고, 이루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끝에서 돌아볼 때, 남는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도 하나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가족도, 이웃도, 함께 신앙의 길을 걷는 지체들도 모두 사랑하도록 주어진 관계입니다. 목장 사역도, 예배도, 섬김도, 결국 그 본질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의 사랑은 불완전합니다. 조건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도 어느 순간 금이 가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니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해 실망하거나 미워하기보다, "그럴 수 있지" 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도 나처럼, 완전한 사랑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관심, 진심 어린 격려, 그리고 이름을 부르며 드리는 기도. 이런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다시 일어설 힘이 됩니다. 크든 작든, 사랑을 주고 베풀며 사는 것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내 안에서 나오는 사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흘러가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먼저 채워지고, 그 사랑이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때, 우리는 지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사랑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인내하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섬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사랑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나의 약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십시오. 삶의 끝에서 "나는 사...

[씨앗칼럼] 마음을 모으면 기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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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아드님을 먼저 하나님 품에 보내드린 김언년 어머니의 방에 도배를 해드렸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빈방은 얼마나 무겁고 쓸쓸했을까요. 새로운 벽지 한 장이 그 슬픔을 다 덮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방 안의 분위기만큼은 조금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모였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전문 도배사는 아니었습니다. 서툰 손길이었고, 때로는 서로 웃으며 실수도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모든 곳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가장 필요한 곳에 정성을 다해 섬겼습니다. 새로 단장된 방을 바라보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날 우리는 섬김이 받는 사람만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함께 손을 모은 우리 모두의 마음도 그만큼 따뜻하게 채워졌습니다. 섬김은 언제나 나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줍니다.

2026년 6월 7일 주일 말씀

 1. 씨앗칼럼: 약점보다 강점을 바라볼 때 요즘 저는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우리 교회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씨앗교회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작다 보니 부족한 것들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고, 더 성숙한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고, 더 풍성한 배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요즘 저는 강점보다 약점을 먼저 떠올리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목사는 교회를 더 건강하고 좋은 공동체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약점만 바라보다 보면,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좋은 것들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눈을 돌려 보았습니다. 씨앗교회에는 참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이 시합에 함께 달려가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고, 밥 한 끼를 나누고, 힘든 소식을 들으면 함께 마음 아파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고, 삶을 압니다. 어쩌면 이것은 큰 공동체에서는 쉽게 누리기 어려운 귀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자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약점만 바라보면 점점 위축되고, 장점을 바라보면 그 장점은 더 자라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도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나는 교회의 어떤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내 옆 사람의 부족함을 먼저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소중한 모습을 먼저 보고 있습니까? 씨앗교회는 분명 부족한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진짜 가족처럼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강점은, 우리가 그것을 귀하게 여길 때 더욱 자라납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미 주신 좋은 것들을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요? 2. 설교 요약: 하늘을 본 사람 본문: 사도행전 7:54-56 위기의...

2026년 5월 31일 주일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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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씨앗칼럼: 포기하지 않는 것 우리 교회에 '영혼의 맛집'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보말 칼국수 집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인분을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주인분은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성도님께 먼저 연락해서 나눠 주시고, 정성껏 만든 묵을 드리고 싶어 아내의 연락처까지 물어보실 만큼 교회 식구들에게 마음을 쏟아 주시는 분입니다. 어제 성도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주인분이 농사지은 채소를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직접 가실 수 없어 대신 받아다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채소를 받으러 들렀다가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교회 식구들이 식사하러 갔을 때 주인분과 함께 계셨던 한 분이 췌장암 말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오후에 그분이 그곳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아내가 기도해 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주인분도 흔쾌히 좋다고 하셨습니다. 목장 모임을 마치고 서둘러 아내와 함께 그분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런데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분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 오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허탈한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냥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주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오는 길에 쉬는 날 함께 식사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주인분은 일요일에 쉰다고 하시며 뭐든지 잘 드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날에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만남의 문이 열렸습니다. 한 영혼이 주님을 만나도록 하는 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 영혼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전하는 통로일 뿐입니다. 문이 닫혀 보일 때도, 기대했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그 영혼을 향한 마음을 내려놓지 않는 것—그것이 전도입니다. 오늘도 씨앗교회는 그렇게, 한 영혼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걸어갑니다. 2. 설교 요약: 보이지 않는 손을 잡고 본문: 사도행전 7:17-43, 53 나를 비추는 영적 거울 앞에 서다 스데반의 기나긴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