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라벨이 씨앗칼럼인 게시물 표시

[씨앗칼럼] 다시, 꿈을 꾸며

이미지
이번 부흥회를 지나며 우리 씨앗교회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부르시고 세우신 이유를 돌아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사람들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요셉에게 주신 꿈도 처음에는 형들의 조롱과 오랜 고난을 지나야 했지만, 결국 한 민족을 살리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요엘 2:28). 하나님의 꿈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우리의 형편이나 교회의 크기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꿈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꿈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꿈을 꾼다는 것은 막연한 소망을 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삶의 자리에서 그분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따라 한 걸음씩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은 무거운 의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더 증명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누리며 기쁨으로 살아가도록 초대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억지가 아니라 은혜로 주님의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번 시간을 지나며 하나님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씨앗 식구들과 함께 이루어가고 싶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붙들고, 작은 것이라도 기쁨으로 순종하며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꿈을 꿉시다. 하나님의 꿈을 꾸고, 그 꿈을 기쁨으로 살아냅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씨앗교회를 통해 이루어 가실 일을 함께 기대합시다.

[씨앗칼럼] 다시 뛰기 시작한 마음

이미지
우리 씨앗교회가 처음으로 부흥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언젠가는 해야 한다고 늘 생각은 했지만, 교회 형편을 생각하면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순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다음 주, 명성훈 목사님을 모시고 집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명성훈 목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은퇴 이후에도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과 부르심의 꿈을 여전히 이루어가시는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개척하고 교회를 섬겨오는 사이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열정을 잃어버렸던 제 자신이 보였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다시 회복되고, 주님의 소원을 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성도님들과 꼭 나누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그 자리가 마련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집회가 우리 씨앗교회에 정말 중요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작은 공동체 안에서 참 많은 아픔과 실패, 그리고 회복을 함께 겪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교회는 작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번에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이 작은 공동체를 통해 무엇을 하기 원하실까?"를 함께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집회에는 성도님 한 분 한 분이 꼭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목사님 혼자, 혹은 몇몇 헌신된 분들만 은혜받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서서 하나님이 이 작은 공동체를 향해 품으신 꿈을 함께 듣고 함께 기도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쁜 중에도 이 시간만큼은 비워두시고, 가족과 이웃도 함께 초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채운 그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회복되고 함께 일어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특별히 성도님들이 나를 위한 신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꿈을 품는 신앙으로 자라가시면 좋겠습니다. 예배 자리에만 머무는 성도가 아니...

[씨앗 칼럼]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미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싫어!"라는 말을 참 자주 합니다.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자주 섞어서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면 작은 불편함이 어느새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커지기도 합니다. 사실 '싫어함'과 '미워함'은 조금 다릅니다. 싫어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의 특정한 모습이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비린내 때문에 추어탕이 싫을 수 있고, 사람이 많은 곳의 소음과 답답함이 싫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 대상 전체를 부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면 미움은 감정의 화살이 사람 자체를 향할 때가 많습니다. 기대했던 것이 무너지고, 상처를 받거나 반복해서 실망하다 보면 "저 사람은 정말 미워"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관계 속에서 한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그 사람의 행동이 싫은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 자체가 미운 것인가?" 누군가 약속 시간을 자주 지키지 않는다면 그 행동은 싫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동 하나 때문에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고 단정하기 시작하면, 행동에 대한 불편함이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구분은 다른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필요합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나는 정말 내가 싫어"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싫은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부족한 행동이나 습관일 수 있습니다. "이런 나의 행동은 싫지만, 나 자신까지 미워하지는 않겠습니다." 행동은 고칠 수 있고, 습관은 바꿀 수 있으며, 실패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 가운데 있는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요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 멈추어 물어보면 좋겠...

[씨앗칼럼] 말씀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살아내는 목회자

이미지
이번에 최영기 목사님께서 81세의 연세에도 다시 강의하시는 「생명의 삶」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특별히 마음에 남은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기 이전에 먼저 성경적인 목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참 단순한 말처럼 들리지만, 제게는 이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어떻게 세워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성도들을 어떻게 양육할지, 우리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강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보다 먼저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생명의 삶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 말씀을 제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성도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말씀을 설명하는 목회자의 모습이 아니라 그 말씀을 살아내는 목회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명의 삶을 통해 배운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기 전에 먼저 제 삶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말씀 앞에 서고, 제가 먼저 순종하고, 제가 먼저 변화되는 목회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쩌면 교회를 세워가는 일은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인 내가 오늘 말씀 앞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81세에도 다시 배우고, 다시 가르치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더 많이 아는 목회자가 되기보다 말씀을 더 깊이 살아내는 목회자. 더 많은 것을 가르치는 목회자가 되기보다 먼저 말씀 앞에 무릎 꿇는 목회자. 그렇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목회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씨앗교회도 조금씩 성경적인 교회로 세워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생명의 삶」의 시간이 단순히 무엇인가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말씀을 다시 삶으로 살아내는 목회자로 서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살아내는 작은 걸음들이 모여 우리 교회와 우리의 삶 가운데 생명이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씨앗 칼럼] 고난이라는 얼굴로 찾아오는 축복

이미지
쉽고 편안하고 안락할 때 신앙이 깊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집이 있고, 돈이 있고,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더 잘 믿을 것 같지만, 인생을 조금 살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은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과 아픔을 지나면서 조금씩 깊어집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있습니다. 기쁜 일을 만나 힘을 얻는 때도 있지만, 때로는 마음 아픈 일을 지나며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것을 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사역하면서 저도 이것을 조금씩 배웠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당황하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에 흔들리기보다 원칙과 기본을 붙들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허물을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덮어주는 것도 배웠습니다. 돌아보면 힘들었던 시간이 저를 다시 세워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의 생각을 내려놓게 했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니 그 시간이 오히려 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시간이 끝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세우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믿음을 깊게 하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준비하시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힘들수록 말씀을 붙들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뒤돌아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고난이라고 생각했던 그 길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때로는 축복이 고난이라는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는 것을.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을 하나님과 함께 잘 걸어가시기를 ...

[씨앗칼럼] 선택

이미지
8월, 무더위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밖에서 활동하기조차 버거운 날씨 속에서, 방학이 끝나기 전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자 문경으로 짧은 휴가를 떠났습니다. 문경은 아내와 함께 목회자 컨퍼런스에 참석하며 알게 된 곳인데, 그때 느꼈던 자연의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 더위엔 바다보다 이곳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여행을 가면 낯선 체험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조용히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습니다.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무엇을 먹을까보다 무엇을 함께 경험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그 마음이 정해지자 제한된 여행 경비를 쓰는 방식도 자연스레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게 된 것이 패러글라이딩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비용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돈보다 아이들의 경험이, 함께 만들어갈 가족의 추억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섰고, 그러자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는 형편이 아니라,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자리에 섭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우리가 진짜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8월 한 달, 우리 교회는 모든 정기 일정을 멈추고 쉼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드려온 예배와 모임, 섬김이 무의미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소중하기에, 그것이 습관이 아니라 지금도 내게 진짜 소중한 것으로 선택되고 있는지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좀처럼 던지기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하늘에서 내려다본 문경의 풍경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은, 무엇에 시간과 마음을 쓸 것인가를 다시 선택했던 그 순간들입니다. 여러분의 이번 여름은 어떤 선택으로 채워지고 있습니까? 그 선택이 곧, ...

[씨앗칼럼] 섬기는 사람이 더 많았던 여름

이미지
지난주, 우리 교회에서 유치부와 아동부 성경학교가 열렸습니다. 부모님들이 말씀과 게임과 먹을거리를 준비하셨고, 중고등부 형과 누나들이 선생님이 되어 동생들을 섬겼습니다. 정작 성경학교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네 명뿐인데, 그 아이들을 섬기기 위해 모인 사람은 그보다 세 배나 많았습니다. 계산으로만 보면 효율이 나오지 않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비효율 속에서 저는 하나님 나라의 셈법을 봅니다. 특별히 중고등부 친구들이 자신의 귀한 여름방학 시간을 내어 동생들을 섬겨준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한창 친구들과 놀고 싶고, 쉬고 싶은 나이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기꺼이 내려놓고 어린 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웃어주고, 손잡아주고, 함께 뛰어준 모습은 세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세상은 자기 시간을 지키라고 가르치지만, 교회는 그 시간을 나누어주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그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숫자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라 사랑으로 채워지는 곳입니다. 네 명의 아이를 위해 열 명 넘는 사람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것, 그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입니다.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은 결코 손해 보는 셈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이 섬김이 세대를 넘어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섬기고, 그 자녀 세대의 형과 누나들이 또 그 아래 동생들을 섬겼습니다. 받은 사랑이 다음 사람에게 흘러가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신앙이 대를 이어 전수되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 아닐까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사랑으로 섬길 때, 그 안에서 다음 세대는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 세대가 자라 또 다음 세대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 교회에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이번 여름, 귀한 시간을 내어 섬겨준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과, 정성으로 준비해주신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네 명의 아이들 안에서, 그리고 그 아이들을 섬긴 손길들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자라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씨앗칼럼] 여름 수련회, 작은 씨앗들이 자라는 시간

이미지
여름 수련회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 역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때, 수련회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수련회를 준비합니다. 수련회 장소는 많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잠자리, 낯선 사람들, 식사 등등 여러모로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바로 핸드폰과의 단절입니다. 그럼에도 이 자리가 너무나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련회를 기대함으로 준비하면 너무 좋겠지만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시작한 수련회를 통해서 아이들이 좋은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조금씩 수련회를 향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가 돌아오면 어디로 갈지 궁금해합니다. 이번 중·고등부 수련회도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영적인 경험들을 하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아이들을 부르시고 주님을 만나는 자리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합니다. 그분은 반드시 우리의 자녀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 가실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유치부와 아동부 수련회는 부모님들이 말씀과 활동, 식사를 준비하고, 중·고등부 학생들이 함께 섬기며 진행합니다. 세대가 함께 다음 세대를 세워 가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신앙은 저절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섬기며, 함께 기도하는 삶을 통해 전해집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말을 듣기보다 우리의 삶을 먼저 봅니다. 그래서 부모의 믿음, 교회의 사랑, 선배들의 섬김이 아이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평생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기초를 세우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작은 씨앗들을 아름답게 자라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씨앗칼럼] 8년 만의 응답

이미지
씨앗교회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도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가정에서 조용히 시작된 예배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금 이곳까지 왔습니다.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 저희를 향한 시선은 따뜻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낯선 교회,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였겠지요. 그럼에도 저희는 그 시선 속에서 동네 분들을 섬기고, 이 땅에 구원받는 영혼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차가웠던 시선은 어느새 사랑의 눈길로 바뀌었습니다. 손수 농사지으신 감자와 야채, 쌀을 나눠주시는 이웃이 되어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늘 작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는 정은 깊어졌지만, 구원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허리를 다치셔서 걸음이 자유롭지 못하신 한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저희는 그분을 찾아가 필요한 것을 채워드리고, 곁에 함께 있어 드렸습니다. 찾아갈 때마다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발걸음을 거듭하는 사이, 굳게 닫혀 있던 그분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주, 그 가정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8년이라는 시간. 짧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늦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정확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하나도 흘려버리지 않으시고 가장 좋은 때에 이루어 가십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도 오래도록 품고 기도해 온 이름이 있습니까? 아직 열리지 않은 문 앞에서 지쳐 계십니까? 8년을 기다려 열린 이 문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할 일은 그 응답의 시간표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도 씨앗교회는 이 마을을 품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작은 순종과 섬김의 걸음들이 ...

[씨앗칼럼] 바라봄이 만드는 미래

이미지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개인의 삶도 그렇고, 우리 씨앗교회의 걸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문제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 문제 앞에서 무엇을 계속 바라보고 되새기느냐,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많은 분들이 어려운 일을 만나면 자꾸만 그 문제를 곱씹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왜 나는 자꾸 넘어질까?’, ‘왜 우리 교회는 더디게 자랄까?’ 하고 같은 생각을 반복하며 마음이 지쳐갑니다. 저도 목회를 하며 그런 밤들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문제를 묵상하라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여호수아가 이 말씀을 받을 때, 그의 앞에는 광야가 아니라 거대한 요단강과 가나안의 강한 민족들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없어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문제를 묵상하면 그 자리에서 두려움이 자라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믿음이 자라납니다. 결국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며 무엇을 되새기고 있느냐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은 불평의 말을 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은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잠시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문제를 되새기고 계셨다면, 오늘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약속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길을 평탄하게 하시고,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씨앗칼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이미지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열등의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열등의식은 그냥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언제나 '비교'라는 씨앗에서 자라납니다. 누군가와 나를 견주는 순간, 그 마음은 이미 싹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열등의식과 싸우려 애쓰기보다, 비교하는 마음 자체를 내려놓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내려놓는 가장 좋은 길은, 나와 이웃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온 우주에 하나뿐인 존재로 여기십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렇게 귀한 존재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하나님께 죄송해서라도 더는 나를 함부로 낮출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 손에 온전히 맡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이루도록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다만 그 길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른 이의 삶을 어떻게 빚어 가시는지는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의지하며, 내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가면 됩니다. 누가 성공했고 누가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지는 세상이 판단할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아실 일입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삶을 하나님은 전혀 다르게 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판단은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심판하실 그 날을 바라보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런 습관이 하루아침에 몸에 배지는 않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젠가 열등의식이 사라질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감사함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실천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나를 부럽게 만들고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그 사람을, 오히려 마음먹고 축하해 보십시오. 따뜻한 말 한마디, 짧은 축하의 글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이 정말 잘되기를 바...

[씨앗칼럼] 함께 세워가는 교회

이미지
씨앗교회를 세워가면서 제 마음에 계속 붙들고 있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완성하시기로 정하신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도록, 하나님은 목회자를 세우셨습니다. 목회자의 자리는 권위나 특권을 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방향성을 붙들고, 그 말씀을 따라 함께 걸어가도록 세워진 자리입니다. 저 역시 완벽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흔들리고 부족한지 저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그럼에도 제가 요즘 우리 씨앗 가족들에게 꼭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편지를 쓰듯 이 글을 씁니다. 교회가 바르게 세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마음을 같이하여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기서 순종이라는 말이 무겁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순종은, 누군가를 억지로 따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조금 내려놓고 공동체의 리더가 제시하는 방향을 믿고 함께 걸어가 보자는 부탁입니다. 집을 지을 때도 그렇습니다. 설계도를 보는 사람과 벽돌을 쌓는 사람의 생각이 매번 다르면 집은 완성되지 못합니다. 각자 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한 사람의 방향을 믿고 손을 맞춰야 비로소 집 한 채가 세워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좋은 생각과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따로따로 펼치기보다, 지금 이 공동체를 이끌어 가시는 방향에 마음을 맞추어 주시면, 씨앗교회는 훨씬 더 든든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같은 모양일 필요는 없습니다. 각 교회에는 그 교회의 리더를 통해 주시는 고유한 방향성과 색깔이 있습니다. 씨앗교회에도 씨앗교회만의 색깔이 있고, 그것은 우리가 함께 마음을 맞추어 걸어갈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속한 이 공동체의 리더를 인정하고 따라주시는 것이 무엇보다 중...

[씨앗칼럼] 두 갈래 길 앞에서

이미지
최근에 아내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아리산을 오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내도 저도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라, 등산이라기보다는 산보하기 좋은 낮은 산을 찾아 걸었습니다. 함께 걸으며 산이 내어주는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도 몸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길을 걷다 보니 경사가 급한 지점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쪽은 짧지만 경사가 가파른 길이었고, 다른 한쪽은 조금 더 길지만 완만하게 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골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가파르지만 빠른 길을, 또 어떤 이는 완만하지만 돌아가는 길을 택하면서 말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런 선택 앞에 놓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나온 제 인생을 돌아보니, 젊음이 한창 왕성하던 때에는 빠르고 가파른 길을 택해 숨 가쁘게 달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정말 좋은 길이라 여기며 그 길을 골랐던 것이지요. 그런데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고 보니, 조금은 돌아가는 길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생각하면서 내딛는 걸음도 참 좋다는 마음이 듭니다. 신앙의 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빠르게 자라고, 빠르게 응답받고,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합니다. 가파른 길이라도 빠르기만 하면 좋은 길이라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완만한 길로, 조금 돌아가는 길로 이끄십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곁에 계신 주님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고, 함께 걷는 지체들을 살피게 되며, 그동안 지나쳐 온 은혜들을 천천히 곱씹게 됩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기까지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빠르게 솟아오른 씨앗이 늘 튼튼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디게, 그러나 깊이 뿌리를 내린 씨앗이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빠른 길이 늘 좋은 길은 아니며, 돌아가는 길이 결코 뒤처지는...

[씨앗칼럼] 사랑하며 사는 삶

이미지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살면서 많은 것들을 이루고 싶고, 이루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끝에서 돌아볼 때, 남는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도 하나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가족도, 이웃도, 함께 신앙의 길을 걷는 지체들도 모두 사랑하도록 주어진 관계입니다. 목장 사역도, 예배도, 섬김도, 결국 그 본질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의 사랑은 불완전합니다. 조건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도 어느 순간 금이 가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니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해 실망하거나 미워하기보다, "그럴 수 있지" 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도 나처럼, 완전한 사랑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관심, 진심 어린 격려, 그리고 이름을 부르며 드리는 기도. 이런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다시 일어설 힘이 됩니다. 크든 작든, 사랑을 주고 베풀며 사는 것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내 안에서 나오는 사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흘러가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먼저 채워지고, 그 사랑이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때, 우리는 지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사랑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인내하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섬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사랑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나의 약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십시오. 삶의 끝에서 "나는 사...

[씨앗칼럼] 마음을 모으면 기적이 됩니다.

이미지
몇 달 전, 아드님을 먼저 하나님 품에 보내드린 김언년 어머니의 방에 도배를 해드렸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빈방은 얼마나 무겁고 쓸쓸했을까요. 새로운 벽지 한 장이 그 슬픔을 다 덮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방 안의 분위기만큼은 조금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모였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전문 도배사는 아니었습니다. 서툰 손길이었고, 때로는 서로 웃으며 실수도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모든 곳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가장 필요한 곳에 정성을 다해 섬겼습니다. 새로 단장된 방을 바라보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날 우리는 섬김이 받는 사람만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함께 손을 모은 우리 모두의 마음도 그만큼 따뜻하게 채워졌습니다. 섬김은 언제나 나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줍니다.

2026년 6월 7일 주일 말씀

 1. 씨앗칼럼: 약점보다 강점을 바라볼 때 요즘 저는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우리 교회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씨앗교회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작다 보니 부족한 것들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고, 더 성숙한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고, 더 풍성한 배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요즘 저는 강점보다 약점을 먼저 떠올리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목사는 교회를 더 건강하고 좋은 공동체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약점만 바라보다 보면,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좋은 것들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눈을 돌려 보았습니다. 씨앗교회에는 참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이 시합에 함께 달려가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고, 밥 한 끼를 나누고, 힘든 소식을 들으면 함께 마음 아파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고, 삶을 압니다. 어쩌면 이것은 큰 공동체에서는 쉽게 누리기 어려운 귀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자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약점만 바라보면 점점 위축되고, 장점을 바라보면 그 장점은 더 자라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도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나는 교회의 어떤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내 옆 사람의 부족함을 먼저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소중한 모습을 먼저 보고 있습니까? 씨앗교회는 분명 부족한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진짜 가족처럼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강점은, 우리가 그것을 귀하게 여길 때 더욱 자라납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미 주신 좋은 것들을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요? 2. 설교 요약: 하늘을 본 사람 본문: 사도행전 7:54-56 위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