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7일 주일 말씀

 1. 씨앗칼럼: 약점보다 강점을 바라볼 때

요즘 저는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우리 교회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씨앗교회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작다 보니 부족한 것들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고, 더 성숙한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고, 더 풍성한 배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요즘 저는 강점보다 약점을 먼저 떠올리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목사는 교회를 더 건강하고 좋은 공동체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약점만 바라보다 보면,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좋은 것들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눈을 돌려 보았습니다. 씨앗교회에는 참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이 시합에 함께 달려가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고, 밥 한 끼를 나누고, 힘든 소식을 들으면 함께 마음 아파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고, 삶을 압니다. 어쩌면 이것은 큰 공동체에서는 쉽게 누리기 어려운 귀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자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약점만 바라보면 점점 위축되고, 장점을 바라보면 그 장점은 더 자라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도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나는 교회의 어떤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내 옆 사람의 부족함을 먼저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소중한 모습을 먼저 보고 있습니까?

씨앗교회는 분명 부족한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진짜 가족처럼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강점은, 우리가 그것을 귀하게 여길 때 더욱 자라납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미 주신 좋은 것들을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요?


2. 설교 요약: 하늘을 본 사람

본문: 사도행전 7:54-56

위기의 순간, 평소의 시선이 진짜 믿음을 증명합니다

스데반의 기나긴 설교가 끝난 직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회개하기는커녕 격분하며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갈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돌을 던질 것 같은 분노의 시선들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처럼 생명이 위협받는 끔찍한 위기 한가운데 놓인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마도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떨며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거나, 도망칠 구멍이 없는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지 살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데반은 사람들의 분노 어린 얼굴을 보지 않았고, 주위를 살피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스데반이 그 무서운 순간에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직감하고 짜낸 일회성 결단이거나 갑자기 특별한 영적 능력이 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저 '평소에 늘 바라보던 곳'을 보았을 뿐입니다. 평소에 늘 땅을 보며 살던 사람은 위기가 닥쳐도 땅을 봅니다. 평소에 늘 사람의 눈치만 보며 살던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도 결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평소의 수많은 훈련을 통해 실전에서 반사적으로 기량을 발휘하듯, 신앙 역시 위기의 때에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모습이 위기 때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무엇을 보십니까? 스마트폰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무엇을 보십니까? 텔레비전은 아닌가요? 우리의 일상과 신앙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평소에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 나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곧 내 신앙의 진짜 주소입니다. 스데반이 위기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슬프면 땅을 보고, 두려우면 시선을 피하지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하늘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나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매일의 훈련이며, 이 훈련이 되어 있어야만 우리는 죽음 같은 위기 속에서도 세상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열린 하늘과 일상의 자리에서 마주하는 하나님의 영광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본 스데반은 세 가지의 놀라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첫째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 둘째는 '하나님의 영광', 셋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이었습니다.

1. 열린 하늘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푸른 하늘이나 구름을 본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늘이 열렸다'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나 나다나엘을 부르실 때처럼, 하나님의 일하심과 통치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순간에만 등장하는 매우 특별한 선언입니다.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며 종교심에 취해있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이 영적인 하늘이 철저히 닫혀 있었지만, 오직 스데반에게만은 하늘이 활짝 열려 하나님의 역사가 보였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고, 말씀을 펼칠 때 닫힌 하늘이 열려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하늘이 열려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하는 시간이 우리를 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본래 '무게감'을 뜻합니다.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 정말로 살아 숨 쉬고 계신다는 압도적인 무게감을 온 존재로 느꼈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섭고 힘든 적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만 같을 때 찾아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결코 화려하고 신비한 환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린 자녀가 자라나는 경이로운 과정, 달라도 너무 다른 부부가 서로 맞춰가며 빚어지는 모습, 잃어버린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기적, 그리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고난의 터널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게 하시는 그 은혜를 체험할 때,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맞이하기 위해 '일어서 계신' 예수님

마지막으로 스데반이 본 가장 절정의 장면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설교의 심장과도 같은 핵심입니다.

먼저 스데반은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 언덕에서 무기력하게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힌 과거의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 하늘 보좌 우편에서 살아 숨 쉬고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오른쪽(우편)'은 가장 높은 권세와 통치를 상징합니다. 스데반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억울함 그 자체였고, 악인들이 득세하여 의인을 짓밟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봄으로써, 눈에 보이는 악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고 통치하고 계심을 확신했습니다. 우리 인생 역시 부조리하고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지만, 우리의 삶은 예수님의 완벽한 다스림 아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너무나 가슴 벅찬 사실이 등장합니다. 신약 성경의 다른 곳들을 보면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으로 묘사됩니다. 앉아 계신다는 것은 구원의 사역을 모두 성취하시고 승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유독 오늘 본문에서만 예수님은 '서 계십니다'.

예수님은 왜 자리에서 일어나셨을까요? 지금 자신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증거하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사랑하는 자녀 스데반을 기립하여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저 멀리 앉아서 "너 혼자 잘 견뎌봐라"며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사방이 우겨쌈을 당하여 철저히 혼자라고 느껴지는 가장 외로운 그 순간에, 예수님은 가만히 앉아 계실 수가 없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우리를 맞이하고, 붙들어 주시고, 응원하고 계십니다.

스데반이 그 참혹한 돌팔매질 앞에서도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고(사도행전 6:15), 원수들을 저주하는 대신 그들을 용서하며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을 위해 일어서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욥이 환난의 끝에서 "이제는 내가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했듯, 스데반은 이 영광스러운 주님을 보았기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첫 시선과 마지막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에 빼앗겼던 우리의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훈련을 시작합시다. 성령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는 어떤 위기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가장 캄캄하고 외로운 날, 나를 안아주기 위해 일어서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천사의 얼굴로 승리하는 우리 씨앗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댓글

  1. 말씀을 들으며 참 많이도 눈물이 나고 감격스러운 순간순간 이었습니다

    스데반의 믿음을 소유하길 기도하며 항상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를ᆢ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있는 신앙의 삶을 살기를 위해 다짐해 봅니다

    예수님이 서 계셔서 우리를 맞이하시는 그 기쁨을 맛보길 소망하고 기대해 봅니다
    주님의 사랑에 어떠한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없는 은혜의 감동으로 매일매일 살아갈수 있음에 감사 감사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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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늘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스데반의 죽음이었지만, 이번에 설교를 들으며, 처음으로 그 죽음너머에 있는 소망의 마음을 느낄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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