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사람을 세우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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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9:19-31 한 방의 역전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증인 되는 삶 우리는 흔히 인생을 바꿀 '한 방(로또, 명문대, 좋은 직장)'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 하지만 부모가 되는 것이나 부부가 되는 것이 단 하루의 사건으로 완성되지 않고 평생을 빚어져야 하는 과정이듯, 우리의 신앙 역시 한 번의 극적인 체험으로 완결되지 않습니다 . 사울이 다마스쿠스(다메섹)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엄청난 사건 역시 인생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진짜 사명자로 세워가시는 기나긴 훈련의 시작이었습니다 . 시력을 회복한 사울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유대인들의 회당으로 달려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합니다 . 자신과 뜻을 함께하던 핍박자들 한가운데서 그가 이토록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신학적 지식이나 철저한 준비 덕분이 아니었습니다 . 성경은 그가 "더욱더 능력을 얻어(22절)" 예수를 증언했다고 기록합니다 . 목사님께서는 여기서 성령의 진짜 '능력'이 무엇인지 우리의 시선을 교정해 주십니다 . 성령의 능력은 단순히 병을 고치거나 기적을 행하여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입술을 열어 증언하게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이 말하는 성령의 핵심 능력입니다 . "나는 소심해서 전도를 못 해요, 말을 잘 못해요"라는 핑계를 멈추고, 내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생명의 복음을 증언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 영광 대신 찾아온 '광주리'의 고난, 나를 빚으시는 시간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면 세상적인 성공과 사람들의 환호가 찾아와야 할 것 같지만, 사울에게 찾아온 첫 번째 열매는 유대인들의 '암살 음모'와 지독한 고난이었습니다 .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영웅 사울은 하루아침에 배신자가 되어, 밤에 몰래 ...

[씨앗칼럼] 여름 수련회, 작은 씨앗들이 자라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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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수련회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 역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때, 수련회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수련회를 준비합니다. 수련회 장소는 많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잠자리, 낯선 사람들, 식사 등등 여러모로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바로 핸드폰과의 단절입니다. 그럼에도 이 자리가 너무나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련회를 기대함으로 준비하면 너무 좋겠지만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시작한 수련회를 통해서 아이들이 좋은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조금씩 수련회를 향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가 돌아오면 어디로 갈지 궁금해합니다. 이번 중·고등부 수련회도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영적인 경험들을 하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아이들을 부르시고 주님을 만나는 자리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합니다. 그분은 반드시 우리의 자녀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 가실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유치부와 아동부 수련회는 부모님들이 말씀과 활동, 식사를 준비하고, 중·고등부 학생들이 함께 섬기며 진행합니다. 세대가 함께 다음 세대를 세워 가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신앙은 저절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섬기며, 함께 기도하는 삶을 통해 전해집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말을 듣기보다 우리의 삶을 먼저 봅니다. 그래서 부모의 믿음, 교회의 사랑, 선배들의 섬김이 아이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평생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기초를 세우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작은 씨앗들을 아름답게 자라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일설교] 불편한 응답, 위대한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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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9:10-19 불편한 응답: 내가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 가라 하실 때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묶어 예루살렘 감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살기를 띠고 다마스쿠스(다메섹)로 찾아왔습니다 . 그 다마스쿠스에 살고 있던 제자 '아나니아'는 사울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 아마도 아나니아의 기도는 "주님, 저 사울의 핍박이 우리를 비껴가게 해주십시오", "저 악한 자가 우리를 잡아가지 못하게 막아주십시오"라는 보호와 안전을 구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 그 간절한 기도 중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 응답을 기대하며 "주님, 여기 있습니다!"라고 반갑게 대답한 아나니아에게, 주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불편한 응답'을 내리십니다 . 사울을 제거해 주시거나 핍박을 막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어나 직가(곧은 길)라 하는 거리로 가서 사울을 찾으라(11절)"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 아나니아는 당황하며 반문합니다 .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해를 끼쳤는지 아십니까? 지금도 우리를 잡아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 받아가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13-14절) ." 이는 "주님, 정말 저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도저히 저 사람에게는 갈 수 없습니다"라는 정직한 항변이었습니다 .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와 같은 불편한 응답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 나를 힘들게 하고 배신한 사람, 내 상식으로는 결코 변화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향해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부르니 그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 내 뜻과 안전을 거스르는 그 불편한 응답 앞에 우리는 어떤 태도로 서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시선: 우리가 포기한 돌덩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