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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자유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본문: 로마서 7:22-8:6, 로마서 12:2 노예 해방 선언에도 노예로 살았던 사람들 1863년 1월 1일, 링컨 대통령은 미국 내 노예 제도의 폐지를 법적으로 선언했습니다 . 그러나 남부 텍사스 지역에는 이 소식이 2년 6개월이나 지난 뒤에야 전해졌습니다 . 더 안타까운 사실은, 마침내 "당신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닙니다"라는 해방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예들이 계속해서 이전과 똑같이 노예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이 주인의 명령에만 복종해 왔던 터라, 법적인 '신분'은 자유인이 되었을지라도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뼛속 깊이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영적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완벽한 하나님의 자녀(자유인)가 되었습니다 . 법정에서 재판관이 무죄를 선포하듯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죄를 확정 지으셨습니다 . 그런데도 왜 우리는 주일이 지나면 다시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과거의 죄 된 습관에 질질 끌려다니는 영적 노예처럼 살아갈까요? 내 안에 거듭난 '영(하나님의 법)'과 아직 새롭게 되지 않은 '육신(죄의 법)'이 끊임없이 싸우는 갈등 속에서, 우리의 '생각'이 여전히 과거의 틀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 나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상황이 아닌 '생각의 틀'입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롬 8:6) 사도 바울은 정죄함 없는 자유를 선포한 직후, 곧바로 '생각'의 문제를 꺼냅니다 . 여기서 생각은 머릿속을 스치는 찰나의 상념이 아니라, 나침반이 늘 북쪽을 향하듯 내 마음과 시선이 고정된 방향(생각의 틀)을 의미합니다 . 파란색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파랗게 보이고, 빨간색 안경을 쓰면 빨갛게...

[씨앗칼럼] 생명을 살리는 말

요즘 잠언을 읽고 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한 가지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잠언이 우리의 말에 대해 참 많이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혀와 입술, 대답과 말에 대한 교훈이 곳곳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사랑하여 즐겨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 (잠언 18:21, 새번역) 말은 그냥 사라지는 소리가 아닙니다. 씨앗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심겨 열매를 맺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지친 사람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기도 합니다. 잠언은 함부로 하는 말은 칼처럼 상처를 주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사람을 살리고 치료한다고 말씀합니다. 같은 혀라도 어떤 말은 상처를 주고, 어떤 말은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말보다 부족함을 지적하는 말을 더 쉽게 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제 자신에게도 “나는 안 돼”, “이번에도 틀렸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은 결국 마음에서 흘러나옵니다. 잠언 4장 23절은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질 때 우리의 말도 조금씩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말하려고 애쓰기보다, 오늘 한마디라도 더 따뜻하게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한 주, 가까운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살리는 말 한마디를 건네보면 어떨까요? “고마워요. 당신이 있어서 힘이 돼요. 잘하고 있어요. 축복합니다.” 그리고 말하기 전에 잠깐 멈추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 말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 사랑하는 씨앗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완벽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주는 말을 선택하는 사람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목장과 교회 안에 따뜻한 말이 많아지고, 우리의 작은 한마디가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한 주도 서로를 살...

[주일설교] 이것은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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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로마서 7:15-20 내 안의 영적 전쟁: 진짜 나와 가짜 나의 갈등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사랑 대신 미움이 불쑥 튀어나오고 거룩함 대신 죄의 습관에 무너지는 내 모습을 보며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 하지만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위대한 사도 바울조차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라며 동일한 탄식을 내뱉었기 때문입니다 . 성경은 이것을 '영'과 '육체(육신)'의 적대 관계라고 부릅니다 . 여기서 말하는 육신은 하나님이 아름답게 지어주신 신체(몸, Body)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 거듭난 '영'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반대 방향으로 향하려는 과거의 죄악 된 본성과 습관(Flesh)을 의미합니다 . 육체의 욕망과 성령은 서로 거스르며 치열하게 싸웁니다 .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내 안에 '새로운 영'이 들어온 사람이라면, 과거의 익숙한 습관을 따르려는 혼·몸과 새로운 영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현상입니다 . "이것은 내가 아니다": 죄와 나를 철저히 분리하라 우리는 화를 내고 미워하며 우울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이게 진짜 내 본모습이구나"라며 자책합니다 . 그러나 바울은 이 치열한 갈등 속에서 엄청난 영적 진리를 깨닫고 선언합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로마서 7:20)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며 옛것은 완전히 지나갔습니다 . 우리의 옛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애쓰는 거룩한 마음이 '진짜 나'의 정체성이고, 악을 행하고 짜증을 내며 미워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육신 속에 잔재로 남아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