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요약] 🚪 은과 금의 자리를 넘어, 예수의 시선으로 일어서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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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사도행전 3:1-8 성전의 '아름다운 문' 앞에는 매일같이 누군가의 손에 메여 오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성소로 들어가는 가장 화려한 길목에 앉아 있었지만, 정작 성전 안의 하나님은 보지 못한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지갑'만 바라보았습니다. 1. 미문(美門) 앞의 역설: 은과 금에 갇힌 시선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했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살길은 누군가의 도움(은과 금)을 받는 것뿐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구걸 : 화려한 미문은 성전을 향한 통로였지만, 그에게는 그저 동전 몇 닢을 얻기 위한 영업 장소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안의 앉은뱅이 : 우리 역시 성전 미문 앞까지는 와있지만, 시선은 여전히 통장 잔고나 사람들의 평가라는 '은과 금'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2. 예수의 시선: "우리를 보시오"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단순히 '불쌍한 거지'로 보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를 저주받은 인생으로 규정했지만, 베드로는 하나님이 회복시키실 '존재'로 그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의도적인 시선의 멈춤 : "우리를 보라"는 요청은 땅에 고정된 시선을 끊어내라는 선포입니다. 은과 금은 오늘 하루를 연명하게 할지는 모르나, 우리를 성소 안으로 이끌 생명은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유한 자만이 줄 수 있는 것 : 베드로는 지식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소유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가 실제가 될 때, 우리도 누군가를 일으키는 통로가 됩니다. 3. 실제적인 일어남: 문 밖에서 문 안으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선포되고 베드로가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을 때, 그는 비로소 '즉시' 힘을 얻어 일어났습니다. 치유의 시작점 : 다리가 먼저 나은 것이 아니라, 시선이 예수께 고정되고 그 이름을 의지하기로 결단한 순간부터 치유는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씨앗 칼럼] 홍시가 교회를 찾아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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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씨앗교회에는 딸아이가 이름을 지어준 ‘홍시’라는 고양이가 찾아옵니다. 누군가의 집에서 사랑받았을지도 모를, 그러나 지금은 버려진 채 교회 주변을 떠돌던 고양이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홍시는 교회를 집처럼 여기며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제 딸의 돌봄을 받으면서 경계하던 눈빛이 조금씩 풀리고, 문 앞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시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아픈 다리를 제대로 딛지도 못한 채, 힘겹게 몸을 이끌고 우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왜 하필 교회였을까요? 홍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보아 줄 누군가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돌봐줄 손길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홍시의 다리를 치료해 주고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그 작은 생명은 말하지 못하지만, 그 사랑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 날 홍시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 한편이 괜히 불안해집니다. ‘오늘은 왜 안 왔지? 혹시 더 아픈 건 아닐까?’ 기다리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 교회에 힘든 누군가가 찾아온다면 어떨까요? 세상에서 다치고 버려진 마음으로 절뚝거리며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교회 안에서 자신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눈빛과 손길을 느끼게 된다면, 그 사람도 다시 이곳을 찾아오지 않을까요? 홍시가 아픈 다리를 이끌고 교회를 찾아온 것처럼, 사람들도 마음의 상처를 안고 교회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를 다시 찾게 되는 이유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설교의 논리가 아니라, 자신을 보살펴 준 사랑의 기억 일 것입니다. 씨앗교회가 그런 곳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절뚝거리며 찾아온 누군가가 이곳에서 치료받고, 이곳에서 쉬고, 이곳을 다시 ‘집’처럼 여기게 되는 공동체 말입니다. 오늘도 홍시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

[주일 설교 요약]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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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사도행전 2:43-47 교회를 고민하다 보면 늘 '성장 전략'이나 '이벤트'의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짜 교회는 시스템이나 전략이 아닌, 하나님이  '실제로'  그곳에 계시고 일하시는 곳이어야 합니다. 오늘 초대교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세 가지 본질적인 기둥을 나눕니다. 1. 거룩한 경외: "예배가 습관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초대교회에 감돌았던 '두려운 마음'은 무서움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영적 긴장감이었습니다. 생명력을 잃은 신앙에 대한 경고 : 목회하며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교회의 외적 위기가 아니라, 성도들이 죄를 지어도 아무런 가책이 없고 예배가 단순한 습관이 될 때입니다. 정보가 아닌 임재 : 예배가 단순히 지식을 소모하는 자리가 되면 교회는 화석처럼 굳어버립니다. 살아있는 간증 : 하나님을 실제로 대면할 때, 우리 삶에는 치유가 일어나고 마음의 병이 낫는 실제적인 '간증'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2. 책임지는 사랑: "식탁은 신학보다 깊습니다" 진짜 교회는 단순히 성경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눈물을 아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필요를 보는 눈 : 초대교회의 나눔은 이념적 평등이 아니었습니다. 형제의 아픔과 결핍이 보였기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물질을 기꺼이 내어준 사랑의 책임감이었습니다. 정답보다 공감 : 집집마다 모여 빵을 뗐던 이유는 서로를 더 깊이 알기 위함입니다. 목장은 정답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는 지체의 가려진 사정과 아픔에 조용히 공감해 주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3. 영적 리듬: "주일의 불꽃이 월요일의 생명으로" 신앙은 성전 안의 거룩함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성전과 가정이 하나로 연결될 때 신앙은 비로소 숨을 쉽니다. 장소 이동이 아닌 공유 : 집집마다 돌아가며 삶을 나눴던 것은 내 은밀...

[씨앗 칼럼]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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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는 제게 참 많은 생각을 남긴 시간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한 분이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주님의 품에 안기셨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한 형제님이 암으로 복잡한 수술을 받으며 생명을 붙들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도하는 자리와 생명을 주님께 맡겨 드리는 자리를 동시에 지나왔습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 그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병상에서 회복을 위해 애쓰고, 어떤 이는 마지막 숨을 고르며 이 땅의 삶을 정리합니다. 한쪽에서는 “주님,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님, 평안히 안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두 기도 모두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이번 장례 가운데 특별히 감사했던 것은 씨앗 식구들 모두가 함께해 주신 모습이었습니다. 눈물로 위로하고 함께 예배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그 모습은, 우리가 이 땅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였습니다. 공동체는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이고, 소망을 나누면 두 배로 크게 만듭니다.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 가운데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명도, 죽음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육신은 연약하고 한계를 가지지만,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치유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마지막 길에서도 소망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숨 쉬고 예배하며,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약하지만, 우리가 붙드는 주님의 손은 강합니다. 그 손 안에 있기에 우리는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 곁에 있는 가족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십시오.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더 건네십시오. 이번 한 주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함께 울고 함께 소망하는 씨앗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일 설교 요약] 성령으로 함께하는 공동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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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사도행전 2:37-42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2장 37-42절 말씀을 통해, 성령의 임재가 어떻게 단순한 현상을 넘어 '공동체'라는 생명의 그릇으로 빚어지는지 함께 나누었습니다.  굳게 닫힌 마음을 뚫는 '말씀의 화살' 베드로의 설교가 선포되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마음의 찔림' 입니다.  이 찔림은 단순히 지식을 얻었을 때 생기는 감각, 혹은 단순한 감정의 동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성령의 역사가 더해질 때, 우리의 딱딱한 심령이 쪼개지고 깨뜨려지는 거룩한 통증입니다.  그들은 탄식하며 묻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우리 삶의 근본적인 방향을 묻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베드로의 진솔한 '경험'이 담긴 증언 베드로의 대답은 교과서적인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며 처절하게 무너졌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찾아와 정죄하지 않고 사랑으로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을 그는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확신을 담아 외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애써서 얻어내는 보상이 아니라, 주님께 나를 맡길 때 주어지는  값없는 선물 이기 때문입니다.  죽이는 '법'에서 살리는 '영'으로 오늘 본문에서 3,000명이 회심했다는 기록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닙니다.  구약의 시내산 : 모세가 율법을 받았을 때, 우상 숭배로 인해 3,00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신약의 오순절 : 성령이 임하시자, 죽었던 영혼 3,000명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율법이 공의로운 기준을 통해 우리가 죽음 아래 있음을 드러낸다면, 성령은 그 죽음을 이기고 우리를 살려 영원...

[씨앗 칼럼] 우리 가운데 시작된 조용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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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교회 안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큰 사건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변화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예전에는 기도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이런 질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실까?” 그런데 요즘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 이 확신이 성도들 안에 생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 귀한 은혜입니다. 최근 시작한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 저는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이 아니라,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찾아오는 분들을 보며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부르시는구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친히 택하신 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부르심의 현장을 바로 곁에서 보고 있습니다. 목장 나눔 속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동안 변화가 없던 가정의 문제에 작은 틈이 생기고, 굳게 닫혀 있던 마음에 조금씩 부드러움이 스며들고, 오랫동안 응답이 없던 기도에 하나님이 손을 대고 계신 흔적이 보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함께 기도하기 시작한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기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를 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 역시 늘 기대가 가득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치기도 했고, 마음이 무거웠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하나님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신앙은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며 걷는 자발적인 걸음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할 때 순종은 억지가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사랑하는 씨앗교회 가족 여러분, 올해 우리는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을 더 많이 보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이번에는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합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고,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주일 설교 요약] 지금,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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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사도행전 2:14-36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두려워 숨어있던 제자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첫 설교를 통해 우리가 구경꾼으로 머물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의 증인으로 살아갈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1. 구경꾼인가, 아니면 증인인가? 구경꾼의 특징 : 구경꾼은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의 틀 안에 갇혀 하나님의 일을 판단합니다. 오순절의 기적을 보고도 "아침 9시에 술에 취했다"고 조롱한 이들처럼,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을 우연이나 방탕함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증인의 특징 : 증인은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를 묻는 사람입니다. 현상을 자신의 감정이나 상식으로 재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증인의 삶이 시작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상황을 해석하라 베드로의 답변 : 베드로는 사람들의 조롱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 현상이 이미 약속된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는 '성경적 성취'임을 선포했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삶 : 증인은 내 생각이나 경험의 데이터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오늘을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3. 성령 임재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예수를 높이시는 성령 :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어떤 기적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나타내고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선포 : 베드로는 담대하게 외칩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한 증인은 내 삶의 실체를 통해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세상에 보여주는 통로가 됩니다. 4.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