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칼럼] 다시 뛰기 시작한 마음

이미지
우리 씨앗교회가 처음으로 부흥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언젠가는 해야 한다고 늘 생각은 했지만, 교회 형편을 생각하면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순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다음 주, 명성훈 목사님을 모시고 집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명성훈 목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은퇴 이후에도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과 부르심의 꿈을 여전히 이루어가시는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개척하고 교회를 섬겨오는 사이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열정을 잃어버렸던 제 자신이 보였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다시 회복되고, 주님의 소원을 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성도님들과 꼭 나누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그 자리가 마련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집회가 우리 씨앗교회에 정말 중요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작은 공동체 안에서 참 많은 아픔과 실패, 그리고 회복을 함께 겪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교회는 작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번에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이 작은 공동체를 통해 무엇을 하기 원하실까?"를 함께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집회에는 성도님 한 분 한 분이 꼭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목사님 혼자, 혹은 몇몇 헌신된 분들만 은혜받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서서 하나님이 이 작은 공동체를 향해 품으신 꿈을 함께 듣고 함께 기도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쁜 중에도 이 시간만큼은 비워두시고, 가족과 이웃도 함께 초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채운 그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회복되고 함께 일어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특별히 성도님들이 나를 위한 신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꿈을 품는 신앙으로 자라가시면 좋겠습니다. 예배 자리에만 머무는 성도가 아니...

[주일설교] 하나님의 거울 앞에 서십시오: 영, 혼, 몸의 비밀

이미지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23, 히브리서 4:12 진짜 내 모습을 비추는 '하나님의 거울' 우리는 아침마다 거울을 봅니다. 내 얼굴에 묻은 것은 없는지, 내 모습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볼 수 없는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정체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기준이나 내 감정이라는 불완전한 거울이 아니라, 나를 정확히 비추는 '하나님의 거울(말씀)' 앞에 서야만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도 내 성격이나 삶이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좌절하고, 기쁨 없이 율법적인 굴레에 갇혀 지낼 때가 많으신가요? 그 이유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영, 혼, 몸'의 비밀 을 깨달아야 합니다. 동물과 사람의 결정적 차이: '영'의 존재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은 우리의 존재가 영(Spirit)과 혼(Soul)과 몸(Body)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흙으로 빚으셨을 때, 동물들 역시 감정과 의지인 '혼'과 오감을 느끼는 '육체(몸)'를 가졌기에 살아 숨 쉬며 인간과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직 사람을 지으실 때만 코에 '생명의 기운(생기)'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바로 이 생기가 하나님의 영역인 '영'입니다. 우리의 '영'은 오직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주신 특별한 영역이며, 오직 인간만이 영, 혼, 몸을 모두 가진 온전한 생명체로 지음 받았습니다. 느껴지는 '혼과 몸', 느껴지지 않는 '영'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의 지성, 감정, 의지인 '혼'과 육체인 '몸'은 일상에서 아주 예민하게 느껴지고 반응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영역인 '영'은 우리의 감각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

[공지사항] 씨앗교회 찬양팀을 모집합니다

이미지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예배자를 기다립니다.” 할렐루야! 씨앗교회에서 함께 예배의 자리를 세워갈 찬양팀 동역자를 찾습니다. 찬양은 단순히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리고, 성도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돕는 귀하고 아름다운 섬김입니다. 씨앗교회와 함께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의 은혜를 나누어주실 분들을 기다립니다. 🙌 모집 분야 • 악기팀 • 싱어팀 📝 지원 방법   아래의 온라인 지원서 양식을 통해 내용을 작성하고 제출해 주세요. https://tally.so/r/VLezE6 여러분의 귀한 섬김을 통해 씨앗교회의 예배가 더욱 풍성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관심과 지원 부탁드립니다! 

[씨앗 칼럼]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미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싫어!"라는 말을 참 자주 합니다.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자주 섞어서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면 작은 불편함이 어느새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커지기도 합니다. 사실 '싫어함'과 '미워함'은 조금 다릅니다. 싫어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의 특정한 모습이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비린내 때문에 추어탕이 싫을 수 있고, 사람이 많은 곳의 소음과 답답함이 싫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 대상 전체를 부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면 미움은 감정의 화살이 사람 자체를 향할 때가 많습니다. 기대했던 것이 무너지고, 상처를 받거나 반복해서 실망하다 보면 "저 사람은 정말 미워"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관계 속에서 한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그 사람의 행동이 싫은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 자체가 미운 것인가?" 누군가 약속 시간을 자주 지키지 않는다면 그 행동은 싫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동 하나 때문에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고 단정하기 시작하면, 행동에 대한 불편함이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구분은 다른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필요합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나는 정말 내가 싫어"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싫은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부족한 행동이나 습관일 수 있습니다. "이런 나의 행동은 싫지만, 나 자신까지 미워하지는 않겠습니다." 행동은 고칠 수 있고, 습관은 바꿀 수 있으며, 실패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 가운데 있는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요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 멈추어 물어보면 좋겠...

[주일 설교] 하나님이 보시는 사람

이미지
본문: 사도행전 10:34-44 완벽해 보이는 신앙, 그러나 가장 필요한 응답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로마 군대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군인이라면 으레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이었겠지만, 고넬료는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고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 심지어 천사가 나타나 "네 기도와 자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4절)"고 칭찬할 만큼 훌륭한 신앙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 요즘으로 치면 교회 생활을 완벽하게 잘하는 모범적인 교인의 모습입니다 . 하지만 천사가 고넬료를 찾아온 진짜 목적은 그의 훌륭한 신앙을 칭찬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 천사는 그에게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를 열심히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베드로를 통해 전해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단순히 그 문제만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기도의 응답을 준비하십니다 . 진짜 기도의 응답은 바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내 안에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를 때조차,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부정하다 하지 말라" 하나님은 고넬료를 위해 베드로를 예비하셨지만, 당시 유대인인 베드로는 부정한 이방인과 교제하거나 밥을 먹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했습니다 . 고넬료의 초청에 응할 리 없는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은 지붕 위에서 기도하던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 안에는 율법에서 금지한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했고, "잡아먹어라"는 주님의 명령에 베드로는 "절대로 먹...

[씨앗칼럼] 말씀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살아내는 목회자

이미지
이번에 최영기 목사님께서 81세의 연세에도 다시 강의하시는 「생명의 삶」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특별히 마음에 남은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기 이전에 먼저 성경적인 목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참 단순한 말처럼 들리지만, 제게는 이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어떻게 세워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성도들을 어떻게 양육할지, 우리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강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보다 먼저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생명의 삶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 말씀을 제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성도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말씀을 설명하는 목회자의 모습이 아니라 그 말씀을 살아내는 목회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명의 삶을 통해 배운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기 전에 먼저 제 삶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말씀 앞에 서고, 제가 먼저 순종하고, 제가 먼저 변화되는 목회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쩌면 교회를 세워가는 일은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인 내가 오늘 말씀 앞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81세에도 다시 배우고, 다시 가르치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더 많이 아는 목회자가 되기보다 말씀을 더 깊이 살아내는 목회자. 더 많은 것을 가르치는 목회자가 되기보다 먼저 말씀 앞에 무릎 꿇는 목회자. 그렇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목회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씨앗교회도 조금씩 성경적인 교회로 세워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생명의 삶」의 시간이 단순히 무엇인가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말씀을 다시 삶으로 살아내는 목회자로 서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살아내는 작은 걸음들이 모여 우리 교회와 우리의 삶 가운데 생명이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주일설교]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

이미지
본문: 사도행전 9:36-43 내 삶이 끝날 때 남겨질 '사랑의 흔적' 욥바에 살던 다비다(도르가)는 착한 일과 구제를 멈추지 않았던 훌륭한 여제자였습니다 . 그녀는 넉넉한 물질만 나눈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연약한 과부들을 위해 직접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며 그들의 팍팍한 삶에 깊숙이 들어가 함께 아파하고 섬겼습니다 . 다비다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었을 때 과부들이 베드로 곁에 서서 그녀가 지어준 옷을 보여주며 슬피 울었던 이유는, 다비다가 그들의 삶 속에 지워지지 않을 선명한 '사랑의 흔적'을 남긴 진정한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 목사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 세상은 이름을 남기려 애쓰지만,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삶 속에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 내 곁에 끝까지 있어 주었던 사람"이라는 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다비다의 죽음 이후에도 그 사랑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남아, 또 다른 기적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 현실을 '결론' 짓지 않고 끝까지 붙드는 믿음 다비다가 숨을 거두자 사람들은 그녀의 시신을 씻어 다락방에 안치했습니다 .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끝난 완벽한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 하지만 이 공동체는 그녀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 마침 가까운 룻다에 베드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합니다 . 목사님께서는 이 대목에서 앤드루 워맥(Andrew Wommack) 목사님의 간증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 아들이 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고 영안실에 안치된 지 5시간이나 지났지만, 그는 죽음이라는 캄캄한 현실을 그대로 결론 짓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을 선포하며 끝까지 믿음을 붙들었고 마침내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 참된 믿음은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