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칼럼] 여름 수련회, 작은 씨앗들이 자라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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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수련회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 역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때, 수련회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수련회를 준비합니다. 수련회 장소는 많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잠자리, 낯선 사람들, 식사 등등 여러모로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바로 핸드폰과의 단절입니다. 그럼에도 이 자리가 너무나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련회를 기대함으로 준비하면 너무 좋겠지만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시작한 수련회를 통해서 아이들이 좋은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조금씩 수련회를 향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가 돌아오면 어디로 갈지 궁금해합니다. 이번 중·고등부 수련회도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영적인 경험들을 하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아이들을 부르시고 주님을 만나는 자리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신뢰합니다. 그분은 반드시 우리의 자녀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 가실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유치부와 아동부 수련회는 부모님들이 말씀과 활동, 식사를 준비하고, 중·고등부 학생들이 함께 섬기며 진행합니다. 세대가 함께 다음 세대를 세워 가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신앙은 저절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섬기며, 함께 기도하는 삶을 통해 전해집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말을 듣기보다 우리의 삶을 먼저 봅니다. 그래서 부모의 믿음, 교회의 사랑, 선배들의 섬김이 아이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평생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기초를 세우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작은 씨앗들을 아름답게 자라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일설교] 불편한 응답, 위대한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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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9:10-19 불편한 응답: 내가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 가라 하실 때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묶어 예루살렘 감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살기를 띠고 다마스쿠스(다메섹)로 찾아왔습니다 . 그 다마스쿠스에 살고 있던 제자 '아나니아'는 사울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 아마도 아나니아의 기도는 "주님, 저 사울의 핍박이 우리를 비껴가게 해주십시오", "저 악한 자가 우리를 잡아가지 못하게 막아주십시오"라는 보호와 안전을 구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 그 간절한 기도 중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 응답을 기대하며 "주님, 여기 있습니다!"라고 반갑게 대답한 아나니아에게, 주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불편한 응답'을 내리십니다 . 사울을 제거해 주시거나 핍박을 막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어나 직가(곧은 길)라 하는 거리로 가서 사울을 찾으라(11절)"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 아나니아는 당황하며 반문합니다 .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해를 끼쳤는지 아십니까? 지금도 우리를 잡아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 받아가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13-14절) ." 이는 "주님, 정말 저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도저히 저 사람에게는 갈 수 없습니다"라는 정직한 항변이었습니다 .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와 같은 불편한 응답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 나를 힘들게 하고 배신한 사람, 내 상식으로는 결코 변화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향해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부르니 그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 내 뜻과 안전을 거스르는 그 불편한 응답 앞에 우리는 어떤 태도로 서고 있습니까 ? 하나님의 시선: 우리가 포기한 돌덩이를...

[씨앗칼럼] 8년 만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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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교회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도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가정에서 조용히 시작된 예배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금 이곳까지 왔습니다.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 저희를 향한 시선은 따뜻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낯선 교회,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였겠지요. 그럼에도 저희는 그 시선 속에서 동네 분들을 섬기고, 이 땅에 구원받는 영혼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차가웠던 시선은 어느새 사랑의 눈길로 바뀌었습니다. 손수 농사지으신 감자와 야채, 쌀을 나눠주시는 이웃이 되어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늘 작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는 정은 깊어졌지만, 구원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허리를 다치셔서 걸음이 자유롭지 못하신 한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저희는 그분을 찾아가 필요한 것을 채워드리고, 곁에 함께 있어 드렸습니다. 찾아갈 때마다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발걸음을 거듭하는 사이, 굳게 닫혀 있던 그분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주, 그 가정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8년이라는 시간. 짧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늦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정확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하나도 흘려버리지 않으시고 가장 좋은 때에 이루어 가십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도 오래도록 품고 기도해 온 이름이 있습니까? 아직 열리지 않은 문 앞에서 지쳐 계십니까? 8년을 기다려 열린 이 문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할 일은 그 응답의 시간표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도 씨앗교회는 이 마을을 품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작은 순종과 섬김의 걸음들이 ...

[주일설교] 먼저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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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9:1-9 살기를 띤 확신을 멈춰 세우신 빛 스데반 집사의 끔찍한 순교 현장에서 증인으로 섰던 청년 사울은, 그 죽음을 계기로 더욱 살기를 띠며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했습니다 . 그는 다마스쿠스(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자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조리 묶어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 스스로 대제사장을 찾아가 위임장을 받아낼 만큼 열정에 불타올랐습니다 . 사울에게 이 일은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 자기가 믿고 아는 율법의 지식 안에서 이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굳게 확신했기에, 200km가 넘는 먼 다마스쿠스까지 일주일을 꼬박 걸어가는 수고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우리 역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기 전까지는 사울과 비슷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 내가 세운 계획,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 세상을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에 강한 확신을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맹렬하게 달려갑니다 . 그러나 멸망을 향해 폭주하던 사울의 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사울 자신의 깨달음이나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진 '환한 빛'이었습니다 . 예수님을 핍박하고 정반대의 길로 달려가던 그에게 예수님이 먼저 빛으로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 우리의 신앙 역시 내가 먼저 하나님을 찾아 구한 것이 아닙니다 . 내가 옳다고 굳게 믿고 폭주하던 인생길 한가운데에, 예수님이 먼저 빛으로 비추어 내 걸음을 멈춰 세워주신 은혜로운 개입 사건입니다 . "사울아, 사울아" 두 번 부르신 음성의 비밀 땅에 엎어진 사울의 귓가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중요한 인물을 만나 친밀한 관계를 맺으실 때 늘 이름을 두 번 반복하여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모세야 모세야) . 즉,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하고 부르신 것은 그를 심판하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