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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강대상에 놓인 꽃꽂이를 바라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다양한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어떤 꽃은 화려한 빛깔로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눈여겨보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꽃들도 있습니다. 수수하고 조용하지만, 바로 그 꽃들이 화려한 꽃을 더욱 빛나게 해줍니다. 만약 화려한 꽃들만 가득하다면,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요즘 우리 씨앗교회를 바라보면서 그 꽃꽂이가 떠오릅니다. 누군가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전도지를 만들 궁리를 합니다. 단순히 종이 한 장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 장에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마음을 담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우리 아이들이 뭘 좋아할까?"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합니다. 작은 선물 하나에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환대가 담깁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예배당을 정성껏 쓸고 닦으며, 누군가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며, 누군가는 무릎 꿇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며 형제자매를 먹입니다. 이 모든 섬김이 따로따로 보여도, 사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도가 전도를 받치고, 섬김이 예배를 풍성하게 하고, 사랑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습니다. 몸의 각 지체가 연결될 때 비로소 온몸이 힘차게 살아 움직이듯이, 우리 각자의 섬김이 연결될 때 교회는 생명력 있게 자라갑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며,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에베소서 4:15). 씨앗교회 성도 한 분 한 분이 바로 그 몸의 일부입니다. 작다고 느끼는 섬김도, 눈에 띄지 않는 수고도,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섬김들이 모여 교회는 오늘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함께여서 감사합니다. 함께이기에 아름답습니다.

[주일 설교 요약] 더 큰 핍박, 더 큰 담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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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5:17-42 신앙생활을 하며 평안하고 안전한 길만 걷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입니다. 하지만 오늘 사도행전의 기록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위기와 핍박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을 통해 수많은 병자가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성전 중심의 권력을 굳게 쥐고 있던 대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맹렬한 시기심에 휩싸입니다. 자신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생명력이, 그들이 무시하던 '갈릴리 촌뜨기'들에게서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사도들을 다시 차가운 감옥에 가둡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위협적인 핍박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깊은 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주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이끌어냅니다. 기적 같은 구출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그들에게 내린 명령은 뜻밖입니다.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을 가두었던 권력의 심장부, 가장 위험한 호랑이 굴로 다시 들어가라는 사명의 재확인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이 대목에서 우리의 시선을 깨우십니다. 내 삶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찾아올 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침묵하시거나 나를 버려두셨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어려움의 크기가 결코 하나님의 부재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캄캄한 핍박과 위기는, 내 삶에 직접 개입하셔서 닫힌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더 깊은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거룩한 초청장입니다. 이 진짜 은혜를 온몸으로 경험한 사도들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새벽같이 성전으로 다시 들어가 생명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얼마 뒤 다시 붙잡혀 공의회 앞에 섰을 때도 그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서슬 퍼런 위협 앞에서도 베드로는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라며 도리어 십자가의 복음을 당당히 선포합니다...

[씨앗칼럼] 함께하는 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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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을 마치고 목양실에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창밖 마당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진아와 희찬이, 그리고 수현 형제와 영진 자매가 함께 정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풀을 뽑고, 흙을 고르고, 꽃을 심으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들. 그 소리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요즘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가상 공간 속에서 보내는 시대입니다. 각자의 화면 앞에 앉아 있지만, 정작 서로의 마음은 멀어지기 쉬운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날 마당에서는 달랐습니다. 손에 흙을 묻히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웃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은 거창한 일을 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땀 흘리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자리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일상의 작은 순간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사용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 가정도 돌아보게 됩니다. 어느덧 아이들이 자라 각자의 삶이 바빠지고,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아쉬운 것은 시간의 양이 줄어든 것보다 관계의 깊이가 충분히 자라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같이 있었던 시간은 많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깊이 나눈 시간은 얼마나 되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잠시 멈추어 함께 걸어가고, 함께 이야기하며,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다시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신앙은 혼자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람과 시간과 자리 속에서 작은 사랑의 씨앗 하나를 심어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일 설교 요약] 두려움 너머, 능력으로 나아가는 진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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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5:12-16 오늘 목사님께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이후 초대교회에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지를 통해, 교회가 나아가야 할 참된 방향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 1. 거룩함의 회복: 배관을 갈아 끼우시는 하나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위선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사건은 교회에 큰 두려움을 가져왔습니다 . 세상의 눈으로 보면 헌금하고도 벌을 받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이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심각한 죄였습니다 . 그런데 성경은 이 두려운 심판 직후에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음을 연이어 기록합니다 . 두 사람을 치신 분도, 기적을 베푸시는 분도 모두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공동체에 온전히 임할 때 비로소 참된 능력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 이는 마치 녹슬고 이물질이 낀 배관을 완전히 새것으로 교체하여 깨끗한 물이 흐르게 하듯, 공동체 안의 위선을 제거하고 거룩하고 정결한 진짜 교회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치열한 정화 작업이었습니다 . 2. 진짜 공동체를 향한 세상의 칭찬   이러한 거룩한 정화 과정을 거친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르게 인식되었습니다 . 성경은 '다른 사람들'은 감히 모임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믿지 않는 '백성'들은 오히려 그들을 칭찬했다고 기록합니다 . 적당히 타협하며 값싼 소속감을 누리려던 주변부 사람들은 거룩한 두려움 때문에 함부로 교회에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던 세상 사람들은, 말과 삶이 일치하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놓는 교회의 참된 모습을 보며 이것이 '진짜'임을 알아보고 칭찬한 것입니다 .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할 때 세상의 무시를 받지 않습니다 . 3. 경계를 허물고 세상으로 흘러가는 능력   교회가 위선을 버리고 온전한 진짜가 되었을 때, 들어오기 힘든 높은 기준이 세워졌음에도 믿는 사람들의 수는 계속해서 더해졌습니다 . 카운트조차 되지 않던 여성들이 동등하게 세워지며 사회적 ...

[씨앗칼럼] 집 안의 해, 그리고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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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교회 안에 따뜻한 풍경이 하나 생겼습니다. 지혜로운 엄마, 지혜로운 아내가 되기 위해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조용히 시작된 자리였습니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안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잘 살고 싶은 마음을 품고 그저 하나님 앞에 나아온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표정이 달라지고, 말이 부드러워지고, 가정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아내'라는 말이 '안에 있는 해'라는 뜻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해가 밝으면 집 안이 따뜻해지고, 그 빛은 자연스럽게 밖으로도 흘러갑니다. 제 아내가 늘 말합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다고. 참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해가 늘 밝게 빛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요. 지치고, 상하고,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빛을 혼자 만들어내려 애쓰기보다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분의 말씀 앞에 머무는 자리에서 다시 채워지고, 다시 밝아집니다. 지혜는 열심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흘러옵니다. 은혜는 버텨내는 힘이 아니라 살아내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함께 배우고, 함께 기도하며 조금씩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 또 하나의 기대가 생깁니다. 이제는 지혜로운 아버지, 지혜로운 남편으로 세워지는 시간도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정의 한쪽만 밝아서는 온전한 빛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가정, 함께 은혜를 구하는 부부, 함께 자라는 공동체를 꿈꿉니다. 조만간, 그 시작을 하려 합니다. 서툴지만 기대가 가득한 여정입니다. 함께해 주세요.

[주일 설교] 마음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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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4:32 - 5:11 씨앗교회 가족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은혜를 나누는 성도 여러분. 평안하신지요. 오늘 목사님께서는 '마음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사도행전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약 2000년 전 성령이 충만하게 임한 예루살렘 초대교회에는 세상이 본 적 없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를 조금도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기꺼이 내어놓아, 공동체 안에 가난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펼쳐진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이 눈부신 이야기 속에 담긴 두 가지 상반된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비춰주셨습니다. 먼저, 키프로스(구브로) 출신의 레위인 '요셉'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고, 사도들은 그를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라고 새롭게 불렀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전 재산을 아낌없이 내어놓게 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영원한 생명과 죄 사함의 은혜를 깊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무한한 은혜를 맛본 사람에게 이 땅의 물질과 소유는 더 이상 삶의 맹목적인 목적이 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영적인 눈이 띄어 공동체의 지체들을 한 피를 나눈 진짜 '가족'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단순한 감정적 체험이 아니라, 이처럼 물질과 이웃을 대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바꾸는 '정체성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부부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그들도 소유를 팔았지만, 그 값의 얼마를 감추고 일부만 사도들 앞에 가져왔습니다. 이들의 진짜 비극은 돈을 전부 바치지 않은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바나바처럼 헌신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고 칭찬은 누리고 싶으면서도, 내 손에 쥔 물질은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탐심'과 '위선'이 그들의 영혼을 병들게 한 ...

[씨앗칼럼] 새 종이에 그리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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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처음 크레파스를 손에 쥐는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종이 앞에서 아이의 눈은 반짝입니다.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는 설렘,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된다는 자유. 그 하얀 종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닙니다. 가능성 그 자체입니다. 요즘 씨앗교회에 처음으로 신앙의 발걸음을 내딛는 분들을 보며 저는 그 하얀 종이를 떠올립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난 분들은 교회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없습니다. 지금 보고, 지금 경험하는 것이 그분들에게 ‘교회’의 첫 그림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 공동체에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는 서로 사랑하는 곳, 약한 자를 품는 곳, 용서가 흐르는 곳입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는 곳입니다.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관계가 교회입니다. 씨앗교회가 처음 신앙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바로 그 그림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해야 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 그 모습이 새로 오신 분들의 하얀 종이에 첫 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새로 오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씨앗교회는 완성된 공동체가 아닙니다. 우리도 여전히 배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중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첫 그림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여러분이 신앙 안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아름다운 기억이 되도록 우리 모두 함께 애쓰겠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종이를 가지고 계신 분들께도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새 종이를 내미시는 분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그분은 우리의 낡고 얼룩진 종이를 가져가시고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십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씨앗교회가 ‘씨앗’인 이유가 있습니다. 씨앗은 언제나 처음입니다. 씨앗은 언제나 가능성입니다. 씨앗은 언제나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하나님이 꿈꾸시는 그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