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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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사도행전 4:23-31 씨앗교회 가족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은혜를 나누는 성도 여러분. 평안하신지요. 오늘 말씀은 사도들이 종교 권력자들의 서슬 퍼런 위협에서 풀려난 직후의 장면을 조명합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곧바로 '동료들(교회 공동체)'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무서운 경고와 위협을 가했는지 있는 그대로 털어놓습니다. 자, 이제 막 탄생한 이 초대교회 공동체 앞에는 현실적인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졌습니다. 이때 교회는 위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1. 문제보다 크신 창조주를 바라보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흩어지거나 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마음으로 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첫 문장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 저 악한 자들을 벌해주십시오!" 혹은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해주십시오!"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주님" 이라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크심을 선포합니다. 내 눈앞에 있는 세상 권력자들의 위협이 아무리 거대해 보여도,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위기를 돌파하는 기도는 바로 이 지점, '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온전히 직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2. 안위가 아닌 '사명(담대함)'을 구하는 기도   이어지는 기도의 내용은 우리의 얄팍한 상식을 완전히 뒤엎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평안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이제 그들의 위협을 내려다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참으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진짜 교회가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위협을 없애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 위협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담대함' 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환난...

[씨앗칼럼] 인생은 일생이 아니라 삼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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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사람의 슬픔 중 하나는 집에 돌아갔을 때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년을 지나며 “내 인생이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이 찾아올 때, 마음 한편에 허무함이 스며들기도 합니다. 남성은 이루지 못한 것들 때문에, 여성은 자신을 다 내어주고 남은 공허함 때문에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단 하나일지 모릅니다. 바로 이 생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인생은 일생(一生)이 아니라 삼생(三生)이라고 말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의 시간이 이 땅을 준비하는 과정이듯, 이 땅에서의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끝을 향해 가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을 준비하는 존재입니다. 성경은 또한 인생을 출장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연히 온 존재가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존재이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하여 돌아가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사명을 띤 여정입니다. 사명은 처음부터 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순종하며 살아갈 때 조금씩 그 윤곽이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씨앗교회 가족 여러분, 혹시 오늘 마음이 허전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은 준비의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허무가 아니라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은 이 땅에서의 시간 하나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우리 각자의 이야기는 아직 쓰이는 중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하루를 알고 계시며 조용히 함께 걸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니 오늘도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순간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인생은 일생이 아니라, 삼생입니다. 🌱

[주일 설교] 성령은 우리를 증인으로 만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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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4:1-22 씨앗교회 가족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은혜를 나누는 성도 여러분. 평안하신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한 순간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선한 일을 행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칭찬과 평안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고난과 장벽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처한 상황이 딱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태어나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사람을 '예수의 이름'으로 단번에 일으켜 세웠습니다. 40년 만에 일어난 전무후무한 기적 앞에 수많은 사람이 경탄하며 모여들었고, 사도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구원할 복음을 전한 대가는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닌, 어둡고 차가운 '감옥'이었습니다. 기득권을 쥐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전하는 사도들이 눈엣가시 같았기에, 날이 저물자 그들을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던 사도들이었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아마도 "주님, 제가 무슨 큰 잘못을 했습니까? 불쌍한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한 것뿐인데, 왜 제게 이런 억울한 시련을 주십니까?"라며 깊은 탄식과 원망을 쏟아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역시 삶에서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한 현실에 갇히게 되면, 당황하며 하나님을 향해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지곤 하니까요. 그런데 다음 날 열린 재판의 풍경은, 우리의 얄팍한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립니다. 사도들을 심문하기 위해 대제사장 가문을 비롯한 그 시대의 최고 권력자들이 총출동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혈안이 되어 소리쳤던 바로 그 서슬 퍼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본다면 공포에 질려 감히 고개조차 들 수 없는 두려운 자리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전혀 주눅 들지...

[씨앗 칼럼] 삼식이와 삼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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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꽂이에서 우연히 한 권의 책을 펼쳤습니다. 기일혜 사모님의 수필집이었습니다. 책갈피가 꽂혀 있던 페이지를 열었는데,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삼식이와 삼복이.”  익숙한 단어에 웃음이 나며 읽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멈추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주일 설교 요약] 예수의 이름, 그 기적 너머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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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사도행전 3:17-26 ​목사님께서는 미문 앞의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 그 이후에 선포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단순한 기적을 넘어선 진짜 복음의 본질' 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전해주셨습니다. ​1. 무지의 자각: 기적의 진짜 목적 ​미문 앞의 기적은 단순히 한 사람의 육신을 고치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느냐 :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가 그들의 '무지(알지 못함)' 때문이었음을 지적합니다. ​ 구원의 출발점 : 복음은 내가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한 죄인인지를 깨닫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 뜻대로 살았던 그 '무지함'을 직면하는 것이 은혜의 첫걸음입니다. ​2. 회개와 돌이킴: 방향의 완전한 전환 ​무지를 깨달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는 바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 입니다. ​방향의 전환 :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단순히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감정적 차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내가 주인 되어 걸어가던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서,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영적 방향의 전환' 을 의미합니다. ​ 새롭게 되는 날 : 우리가 온전히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해 주시고 주님 앞으로부터 다가오는 진정한 회복과 평안, '새롭게 되는 날(Times of refreshing)' 을 허락하십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복 (가장 위대한 기적) ​우리는 흔히 병이 낫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진정한 복의 정의를 새롭게 합니다. ​ 악에서 돌아서는 생명 :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 예수를 세워 우리에게 보내신 이유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악함에서 돌아서게 하는 진짜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씨앗칼럼] 다름은 벽이 아니라, 은혜가 스며드는 '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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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교회라는 울타리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다채로운 삶의 빛깔들이 모여 있습니다. 자라온 환경도, 타고난 성격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저마다 제각각입니다. 누구는 조용한 봄바람 같고, 누구는 활기찬 여름볕 같습니다. 우리가 지고 온 삶의 무게와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아픔의 깊이 또한 모두 다릅니다. 사실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이렇게나 다른 우리가 한자리에서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신기하고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기분 좋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서로를 억지로 끼워 맞추거나 개성을 포기하게 만들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역사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조금만 더 기다려 줄래?”, “조금만 더 깊이 이해해 볼까?” 하며 우리 마음을 끊임없이 다독여 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은 생각이 비슷해서도, 취향이 같아서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다름은 더 이상 불편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로 묶으시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교회 안에서 누군가의 ‘다름’을 마주할 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 다름은 사이를 갈라놓는 벽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스며드는 '틈'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은 내 마음의 지경을 넓히시고, 그를 품어 안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예수님의 넉넉한 마음을 배워갑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울고 웃는 모든 시간들. 소박한 식탁에 둘러앉아 온기를 나누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눈물로 기도하는 그 풍경 자체가 바로 우리에게 주신 살아있는 ‘복음의 편지’입니다. 교회는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모임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이들이 하나님이라는 커다란 품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어가는 기적의 현장입니다. 이 따스한 비밀이 우리 씨앗교회 공동체 안에, 그리고 여...

[주일 설교 요약] 예수의 이름이 실제가 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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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사도행전 3:11-16 오늘 목사님께서는 지난주 미문 앞의 기적, 그 직후에 벌어진 상황을 통해 우리 교회가 진짜 붙들어야 할 능력의 실체 가 무엇인지 전해주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제 마음에는 시선을 모으고 다시 흩어내는 베드로의 단호한 외침이 깊이 남았습니다. 1. 극명한 대조: "우리를 보라" vs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오늘 설교에서 가장 소름 돋는 영적 통찰은 바로 이 두 시선의 대조에 있었습니다. "우리를 보라" (은혜의 통로) : 지난주, 베드로는 절망에 빠진 앉은뱅이에게 "우리를 보라" 며 시선을 끌어당겼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잘남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영혼에게 '예수의 시선'을 전달하기 위한 거룩한 도구로서의 외침이었습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영광의 차단) :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기적을 보고 열광하며 솔로몬 행각으로 몰려든 수많은 군중을 향해 베드로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합니다. "이 일을 왜 기이하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사역의 본질 :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역자(사람)를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짜 복음의 사람은 그 쏟아지는 시선과 영광을 1초도 자신에게 머물지 않게 하고,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께로 반사시켜 버립니다 . 내가 영광을 가로채는 순간, 예수의 이름은 힘을 잃기 때문입니다. 2. 권능과 경건의 착각을 버려라 사람들은 눈앞의 기적을 베드로의 '권능(Power) '이나 '경건(Piety)' 때문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우리의 착각 : 우리도 자주 이런 함정에 빠집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내가 금식을 해서, 내가 봉사를 많이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은연중에 생각합니다. 철저한 자기 부인 : 목사님께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