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7:57-8:1
닫힌 귀와 열린 하늘, 우리의 신앙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며,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서 자신을 맞이하려 하시는 벅찬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목도한 이 영광스럽고 놀라운 실재를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보십시오!"라고 간절히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 외침을 들은 공의회 무리들의 반응은 철저히 달랐습니다. 그들은 어린아이들이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때 귀를 틀어막듯 길을 막아버렸고, 입을 다물라는 듯 큰 소리를 지르며 스데반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돌도 아닌 크고 치명적인 돌덩어리들을 들고 그를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모든 신앙인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보아야 할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왜 그토록 분노하며 진리를 거부했을까요? 그것은 스데반이 바라본 신앙의 목적과 무리들이 쥐고 있던 신앙의 목적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무리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 민족의 회복, 그리고 자신들이 세워놓은 율법 체계를 지키는 데 머물러 있었습니다. 내 목적과 내 신념을 건드리는 진리가 선포될 때, 마음이 열리지 않은 자들은 찔림을 받는 대신 두려움이 섞인 분노를 표출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들을 비난하지만, 우리의 모습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덧 익숙함에 빠져 습관적으로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저 익숙한 종교 행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내 목적을 이루려 하나님을 끌어당기는 대신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스데반이 그 끔찍한 위기 속에서도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굳어진 마음의 귀를 열고, 매너리즘에 빠진 신앙에서 벗어나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헛되지 않은 죽음, 사울의 가슴에 심겨진 한 알의 밀알
분노한 무리들이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치는 그 처참한 순교의 현장에, 훗날 이방인의 위대한 사도가 될 청년 '사울'이 증인으로 서 있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당하는 것을 너무나 마땅하고 당연한 일로 여겼던 사람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하늘의 영광을 외치던 스데반의 삶은 사람들의 돌에 맞아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난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죽음을 결코 헛되이 두지 않으셨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붙잡혀 온 순간부터 천사의 얼굴로 최후를 맞이하는 모든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돌에 맞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의 영광을 외치며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던 스데반의 모습은, 사울의 가슴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씨앗'으로 심겨졌습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껍질이 깨지고 죽어야만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듯, 스데반의 순교라는 깨어짐은 훗날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위대한 사도 바울로 거듭나게 하는 영적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바울을 통해 소아시아와 유럽 전역에 세워진 수많은 교회의 열매는, 결국 스데반의 죽음이라는 밀알이 맺은 영광스러운 결실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누군가를 위해 흘리는 눈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리는 기도, 끝까지 사랑으로 섬기는 그 걸음이 당장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심어놓은 그 복음의 씨앗과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씨앗은 반드시 누군가의 영혼을 살려내는 생명으로 자라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 구원의 열매가 주는 영광과 기쁨을 씨앗을 심은 우리와 함께 나누게 하실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결코 낙심하지 말고, 묵묵히 기도의 씨앗을 심는 걸음을 이어가야 합니다.
돌무더기 앞에서도 천국이 '실제'가 된 사람의 두 가지 기도
돌무더기가 쏟아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스데반은 무릎을 꿇고 마지막으로 두 가지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첫째는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주십시오"라며 자신의 온전한 생명을 주님께 의탁하는 기도였고, 둘째는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라며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자들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나를 향한 작은 오해 하나도 억울해서 견디지 못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마음으로 품고 용서하는 것조차 엄청난 영적 싸움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스데반은 자신을 죽이려 달려드는 자들을 저주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부르짖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스데반이 바라본 하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가 그저 머릿속의 지식이나 상상이 아니라, 가장 생생하고 압도적인 '실제'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보좌에서 일어서 계신 예수님의 사랑과 시선이 너무나도 선명한 실제였기에, 스데반은 육신을 부수고 날아오는 현실의 돌덩어리 앞에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눈앞의 돌들보다 하늘의 영광이 훨씬 더 크고 뚜렷하게 보였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의 분노보다 자신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더 크게 다가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벽한 실제가 된 사람의 마음은 영혼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목적으로 가득 차게 되며, 그 안에는 더 이상 원망이나 억울함, 이기심이나 두려움이 머물 공간이 사라지게 됩니다.
인생의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내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 내가 평생 어느 곳을 바라보며 살아왔는지를 증명합니다. 스데반의 이 위대한 용서의 기도는 죽음의 순간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평생을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온 자의 삶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땅의 현실에만 매몰되어 살 것인가, 아니면 스데반처럼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오늘 내 삶의 '실제'로 살아낼 것인가. 훗날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내 영혼을 받아주십시오"라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도록, 이 땅에서 하늘을 살아내는 공동체로 함께 걸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6월 14일 씨앗칼럼 <마음을 모으면 기적이 됩니다> 읽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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