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씨앗뉴스] 함께 있어서 좋은 가족
1. 설교 요약
본문: 시편 133편 1–3절"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시 133:1–3)
혼자 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어릴 적 소풍 전날은 설레서 잠을 못 잤습니다. 못 먹던 음식도 있었고, 무엇보다 보물찾기가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놀이공원에 가는 것도 아니고 동네 솔밭에 가는 소풍이었지만 좋았습니다. 오늘 야유회도 그렇습니다. 맛있는 음식, 노래, 게임을 기대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혼자 하면 재미있을까요. 혼자 하는 보물찾기, 혼자 먹는 밥, 혼자 하는 게임은 즐겁지 않습니다. 즐거움의 이유는 함께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시편 133편은 형제자매가 어울려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지 노래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가족이라는 선물을 통해 무엇을 주시려는지 세 가지로 나누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가족으로 부르셨습니다
1절의 '함께 산다'는 같은 공간에 몸만 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마음을 나누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는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좋아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맞아서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도 안 맞는데 하물며 서로 다른 우리가 잘 맞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한 가족이 된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엡 2:19)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자녀에게 부모와 형제가 있듯,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만 드리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찬양받기를 원하셔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면 개인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족을 주셨습니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형제자매를 골라서 만든 사람도 없습니다. 교회 가족도 내가 원하는 사람을 골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연결되어 가족이 되었습니다.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고 맞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네 가족이다" 하십니다. 한 부모에게서 나왔기에 형제인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모두 형제자매입니다. 그 가족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 그것이 교회입니다.
부모가 가장 속상할 때는 자녀들이 서로 싸울 때입니다.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내가 바라는 건 다른 게 아니라 형제가 화목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같으십니다. 서로 잘났다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안에서 서로 못하는 것을 이해하고 품어주기를 원하십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는 자주 싸우지 않습니다. 성숙한 형이 동생을 받아주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성숙한 사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품어주면서 함께 자라고 함께 걸어갑니다.
목장에서 식사를 같이 하고 삶과 기도 제목을 나누는 이유도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넋두리를 들어주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듣고 함께 회복되고 성장하는 자리입니다. 가족은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를 버리지 않고 함께 가는 관계입니다. 어려울 때 짐을 함께 지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버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여기 계신 어른들을 보십시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여러분의 부모이고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어른들은 옆에 있는 아이들을 보십시오. 교회의 미래라서가 아니라 내 손자 손녀, 내 아들딸입니다. 나이가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오늘 야유회도 그냥 먹고 노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으로 서로를 더 알아가는 걸음입니다.
함께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갑니다
2절은 제사장을 세울 때 머리에 붓던 기름을 말합니다.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울 때 부은 기름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별하여 쓰시겠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름은 머리에 머물지 않고 수염을 타고 옷깃까지 흘러내렸습니다. 기름의 향기와 풍성함이 온몸에 퍼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흘러갑니다. 한 사람이 받은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고, 한 사람의 기도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기도가 되고, 한 사람의 사랑이 공동체로 흘러갑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도가 부모에게 흘러가고, 부모의 믿음과 섬김이 자녀에게 흘러가고, 먼저 믿은 성도의 사랑과 헌신이 새로 온 분들에게 흘러갑니다. 은혜가 꼭 어른에게서 아이에게로만 흐르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이 찬양할 때 어른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요즘 희찬이가 우리 집에 머물면서 식사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별도 만드셨고 모든 것을 예쁘게 만드셨다고 하나하나 고백하며 감사하는 그 기도에 제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먼저 믿었다고, 많이 안다고 흐름의 위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배워가는 관계입니다.
은혜는 혼자 독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론의 머리에만 머물 기름이었다면 흘러내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흘러가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말만 듣고 자라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서로 어떻게 사랑하고, 섬기고, 이해하는지를 보고 배웁니다. 서로 웃고 인사하고 챙겨주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구나, 내 아픔을 만져주는 곳이구나" 하는 것을 보고 교회를 따뜻한 가족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왜 인사를 안 하느냐" 하지 마십시오. 인사 안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먼저 반갑게 인사해 주면 아이들도 점점 인사하게 됩니다. 말로만 가르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보여주고, 다가가야 합니다. 상대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다가가십시오. 받은 은혜가 멈추지 않으려면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함께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3절의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쪽의 높은 산으로, 늘 이슬이 풍성하게 내리는 곳입니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고 비가 귀한 이스라엘에서 이슬은 식물과 땅을 살리는 생명의 통로였습니다. 그 헐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리는 것 같다고 하신 모습이 바로 형제가 함께하는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 같아도 속은 메마른 사람이 많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건강 걱정, 자녀 문제,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 다가와 마음을 만져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면, 메마른 땅에 이슬이 내리듯 그 심령에 새 생명이 시작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하는 관심 한마디, 그리고 습관처럼 하는 "기도할게요"가 아니라 정말 그 영혼을 향한 진심이 담긴 기도. 내 가족이 아프면 대충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 진심이 담긴 성도의 교제가 영혼을 살립니다. 교회는 힘든 사람이 위로받고, 지친 사람이 다시 힘을 얻고, 외로운 사람이 가족을 발견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본문은 주님께서 "거기에서" 복을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형제자매가 어울려 함께 사는 그곳,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인 교회에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자녀들이 싸우면 부모는 아프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릅니다. 하나님도 똑같으십니다.
그 복은 돈을 많이 벌거나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의 복도 필요하지만 본문이 말하는 복은 "곧 영생"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영원한 생명의 복이 부어지는 통로로 우리를 쓰기 원하십니다. 생명의 물이 흘러가고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행 2:46–47)
초대교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내가 잘해서, 대단해서가 아니라, 주님 말씀대로 함께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면 그곳에 복음의 생명이 넘치게 됩니다. 좋은 설교를 많이 듣는 것, 지식을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에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처음 온 사람이 낯설지 않고 따뜻하고 편안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화목한 집에 가면 포근하고, 싸우는 집에 가면 밥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빨리 나가고 싶습니다. 교회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웃으며 자랄 수 있는 교회, 예수님이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않으셨듯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가 아니라 사랑의 가르침 속에서 자라고 어르신을 존중할 줄 아는 교회, 힘든 사람이 찾아와 위로받는 교회,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나눈 세 가지
하나님은 우리를 한 가족으로 부르셨습니다. 싸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가족입니다.
함께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갑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누군가의 은혜가 되는 통로가 되십시오. 머리에만 갇혀 있는 기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 복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받는 복이 공동체의 복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서 좋은 가족, 하나님의 복을 마음껏 누리는 씨앗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야유회
빨대 하나로 하나 되기 — 씨앗교회 가을 야유회
10월 25일 주일, 연합예배를 마친 씨앗교회 가족들이 수변공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목사님이 전날 공지에 쓰신 "가을 햇살 아래서 교제하는 야유회"라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 날씨였습니다.
도착해 보니 천막과 테이블, 의자가 이미 갖춰져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예비하심에 놀랐다"고 하셨습니다. 돗자리를 챙겨 오라던 공지가 무색해질 만큼이었습니다.
점심은 정성껏 싸 온 김밥과 어묵국, 과일컵. 어르신 테이블에서도 아이들 테이블에서도 같은 메뉴가 올라갔고, 네 살배기부터 아흔을 넘기신 성도님까지 한 천막 아래서 같은 밥을 먹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게임이었습니다. 빨대를 입에 물고 고리를 옆 사람에게 넘기는 릴레이에 두 줄로 마주 앉았는데, 손을 쓸 수 없으니 얼굴이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 예배당에서는 멀찍이 앉던 분들이 코앞에서 눈을 맞추며 고리를 넘겼고, 그 진지한 표정들이 보는 사람을 더 웃게 했습니다.
남은 음식은 근처 어르신, 카페에 나눠 드렸습니다. 받으신 분들이 "너무 좋아하셨다"는 사모님의 전언입니다. 머리에 부은 기름이 옷깃까지 흘러내리듯, 우리끼리 먹고 끝난 것이 아니라 밖으로 한 번 더 흘러간 하루였습니다.
준비하고 섬겨 주신 모든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3. 평신도 세미나 참석
970번째 세미나에 다녀온 두 사람
야유회가 있던 같은 주말, 조이원·정지현 성도님 부부는 다른 자리에 있었습니다. 10월 23일(금)부터 25일(주일)까지 열린 제970차 '묻고 듣고 순종하는 평신도 세미나'입니다.
두 분은 앞으로 청년 목장을 세우는 일을 앞두고 이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사흘 동안 묻고, 듣고, 순종하는 목장의 원리를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조이원 성도님은 단톡방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기도해주신 덕분에 저희도 평신도세미나 잘 다녀왔습니다. 다음 주에 풍성한 은혜 나누기 위해 잘 준비해서 뵐게요.
김인숙 성도님의 답글입니다.
풍성한 은혜로 함께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젊은 부부로 미래의 일꾼 삼으시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들로 귀하게 쓰실 줄 믿습니다.
주일 설교는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이 옷깃까지 흘러내리듯 은혜는 흘러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분이 받아 온 것이 다음 주 나눔에서 공동체로 흘러오기를 기대합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