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10:34-44완벽해 보이는 신앙, 그러나 가장 필요한 응답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로마 군대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군인이라면 으레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이었겠지만, 고넬료는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고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천사가 나타나 "네 기도와 자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4절)"고 칭찬할 만큼 훌륭한 신앙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교회 생활을 완벽하게 잘하는 모범적인 교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천사가 고넬료를 찾아온 진짜 목적은 그의 훌륭한 신앙을 칭찬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천사는 그에게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를 열심히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베드로를 통해 전해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단순히 그 문제만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기도의 응답을 준비하십니다. 진짜 기도의 응답은 바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내 안에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를 때조차,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부정하다 하지 말라"
하나님은 고넬료를 위해 베드로를 예비하셨지만, 당시 유대인인 베드로는 부정한 이방인과 교제하거나 밥을 먹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했습니다. 고넬료의 초청에 응할 리 없는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은 지붕 위에서 기도하던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 안에는 율법에서 금지한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했고, "잡아먹어라"는 주님의 명령에 베드로는 "절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라며 세 번이나 강하게 거부합니다.
이 환상은 단순히 음식 규례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속 깊이 뿌리박힌 사람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시청각 교육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15절)"는 말씀은, 하나님이 택하고 사랑하시는 이방인을 네 기준과 편견으로 함부로 정죄하거나 밀어내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였습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내 마음과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향해 쉽게 선을 긋고 벽을 칩니다. "저 사람은 가능성이 없어, 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라며 내가 포기한 그 사람을 하나님도 포기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사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밀어내고 판단하는 그 영혼마저도 동일한 십자가의 사랑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사람의 조건과 배경을 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영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편견이 깨진 자를 통해 열리는 구원의 문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고집과 편견을 내려놓고 고넬료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신다"고 선포하며 십자가 복음을 전합니다. 이 생명의 복음이 선포될 때, 말씀을 듣던 모든 이방인에게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셨고 그들은 침례를 받으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은 왜 굳이 고집스러운 베드로를 보내 이 일을 행하셨을까요? 천사를 통해 다이렉트로 복음을 전하고 성령을 주시면 편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철저히 '사람(교회)'을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넬료에게는 복음을 전해줄 베드로가 필요했고, 베드로에게는 자신만의 좁은 틀을 깨고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마음을 배울 고넬료가 필요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수많은 고넬료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견고하게 세워진 편견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영혼들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먼저 다가가 사랑으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베드로로 사용하셔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내시고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역사를 이 땅에 완성해 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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