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9:36-43내 삶이 끝날 때 남겨질 '사랑의 흔적'
욥바에 살던 다비다(도르가)는 착한 일과 구제를 멈추지 않았던 훌륭한 여제자였습니다. 그녀는 넉넉한 물질만 나눈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연약한 과부들을 위해 직접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며 그들의 팍팍한 삶에 깊숙이 들어가 함께 아파하고 섬겼습니다. 다비다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었을 때 과부들이 베드로 곁에 서서 그녀가 지어준 옷을 보여주며 슬피 울었던 이유는, 다비다가 그들의 삶 속에 지워지지 않을 선명한 '사랑의 흔적'을 남긴 진정한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세상은 이름을 남기려 애쓰지만,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삶 속에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 내 곁에 끝까지 있어 주었던 사람"이라는 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비다의 죽음 이후에도 그 사랑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남아, 또 다른 기적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현실을 '결론' 짓지 않고 끝까지 붙드는 믿음
다비다가 숨을 거두자 사람들은 그녀의 시신을 씻어 다락방에 안치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끝난 완벽한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공동체는 그녀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가까운 룻다에 베드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이 대목에서 앤드루 워맥(Andrew Wommack) 목사님의 간증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들이 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고 영안실에 안치된 지 5시간이나 지났지만, 그는 죽음이라는 캄캄한 현실을 그대로 결론 짓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을 선포하며 끝까지 믿음을 붙들었고 마침내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절망적인 현실을 내 인생의 '최종 결론'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너머에서 생명을 살리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끝까지 기대하며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매일 강할 수는 없습니다. 고난 앞에서 기도할 힘조차 잃고 포기하고 싶을 때, 내 곁에 다가와 "포기하지 마, 내가 너와 함께 기도해 줄게"라고 말해주며 나의 약한 믿음을 단단히 붙들어 줄 지체들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동체를 허락하신 이유입니다.
함께 무릎 꿇는 공동체, 복음의 통로가 되다
다락방에 올라간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문밖에서는 과부들과 온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간절히 무릎을 꿇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의 간절한 기도가 하나로 모였을 때, "다비다야 일어나시오!"라는 베드로의 선포와 함께 죽었던 자가 눈을 뜨고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너진 가정과 잃어버린 믿음을 살리고 일으키시는 분은 베드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다비다를 살리신 이유는 단지 한 개인의 생명을 연장해 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이 온 욥바에 알려져 수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듯, 우리의 무너진 일상과 질병이 회복되는 것은 결국 이웃이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거룩한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기 위함입니다. 생명은 결코 감출 수 없습니다. 나 하나 회복되고 잘 사는 것으로 끝나는 복음은 없습니다.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이는 내 안의 문제, 자녀, 질병 앞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섣불리 절망을 결론 내리지 말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우리 씨앗교회가 상처받고 넘어진 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서로의 다비다와 베드로가 되어주며 끝까지 살려내는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로 든든히 서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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