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불편한 응답, 위대한 순종


본문: 사도행전 9:10-19

불편한 응답: 내가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 가라 하실 때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묶어 예루살렘 감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살기를 띠고 다마스쿠스(다메섹)로 찾아왔습니다. 그 다마스쿠스에 살고 있던 제자 '아나니아'는 사울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나니아의 기도는 "주님, 저 사울의 핍박이 우리를 비껴가게 해주십시오", "저 악한 자가 우리를 잡아가지 못하게 막아주십시오"라는 보호와 안전을 구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 간절한 기도 중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응답을 기대하며 "주님, 여기 있습니다!"라고 반갑게 대답한 아나니아에게, 주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불편한 응답'을 내리십니다. 사울을 제거해 주시거나 핍박을 막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어나 직가(곧은 길)라 하는 거리로 가서 사울을 찾으라(11절)"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당황하며 반문합니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해를 끼쳤는지 아십니까? 지금도 우리를 잡아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 받아가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13-14절)." 이는 "주님, 정말 저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도저히 저 사람에게는 갈 수 없습니다"라는 정직한 항변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와 같은 불편한 응답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 나를 힘들게 하고 배신한 사람, 내 상식으로는 결코 변화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향해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부르니 그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내 뜻과 안전을 거스르는 그 불편한 응답 앞에 우리는 어떤 태도로 서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시선: 우리가 포기한 돌덩이를 '택한 그릇'으로 보시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과거와 악행을 몰라서 아나니아를 그곳으로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의 과거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겉모습(행동)만을 보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실 목적과 뜻을 보시는 분입니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15절)

우리는 너무나 쉽게 "저 사람은 절대 안 돼", "원래 저런 사람이니 변하지 않을 거야"라며 사람을 포기해 버립니다. 심지어 스스로를 향해서도 "내 인생은 실패했어, 나 같은 사람은 더 이상 안 돼"라며 자신을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의 실패와 과거의 죄보다 훨씬 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과거의 행위에 묶어두지 않으시고, 새롭게 하실 '택한 그릇'으로 보십니다.

목사님께서는 '조각가와 돌덩어리'의 예화를 통해 이 시선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옆에서 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길가에 놓인 것이 그저 거칠고 쓸모없는 '돌덩어리'로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조각가의 눈에는 그 돌 속에서 깎아져 나올 아름다운 '작품'이 보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돌덩어리로 보며 비난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난 껍질 속에 담긴 위대한 하나님의 작품을 보고 계십니다.

위대한 순종: 원수를 '형제'라 부르며 눈을 뜨게 하는 아나니아의 손길

"그는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라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아나니아는 더 이상 토달지 않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핍박자 사울이 있는 집으로 찾아 들어가 그에게 손을 얹습니다.

이때 아나니아의 입에서 터져 나온 첫 고백은 가히 놀랍습니다.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17절)

자신들을 죽이러 온 살기 등등한 원수를 향해 "형제여"라고 부른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의 과거 악행을 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실 택한 그릇'을 보았기에 원수를 형제로 품고 안수할 수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의 위대한 순종과 기도를 통해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시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는 일어나 침례를 받고, 성도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영적·육적 힘을 얻게 됩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원수 사울이 아나니아의 순종을 통해 비로소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고, 위대한 사도 바울로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아나니아'가 되는 기적

  • 신앙은 결코 혼자 걷는 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눈 먼 사울을 직접 눈 뜨게 하실 수 있었음에도 굳이 아나니아를 보내신 이유는, 무너지고 눈 먼 영혼은 누군가의 다가감과 격려, 사랑의 기도를 통해서만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누군가를 세우는 '아나니아'로 서십시오. 우리 스스로도 과거에 거역하던 '사울'이었으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해 줄 아나니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 돌덩이가 아닌 '작품'으로 보십시오. 남편, 아내, 자녀, 혹은 목장 공동체의 연약한 지체들을 보며 판단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듬어 가실 위대한 그릇임을 믿고 먼저 손을 내밀 때, 우리 교회는 상처 입은 영혼들이 시력을 회복하고 사명자로 일어서는 기적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댓글

  1. 아나니아에 대해 사실 스치듯 읽었어요. 말씀 들으며, 그의 결단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라면 과연 그럴수 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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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할수있습니다^^
      주님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사랑하는 딸을 아나니아로 세우셔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줄 믿습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두렵고 힘들수 있으나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기억하며 주신 강하고 담대한 능력으로 일하게 하시며 세워가실줄 믿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나를 향한 계획이라면 기꺼이 나를 주님께 내어드리는 우리모두가 되게하실줄 믿습니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수없는 하나님선물^^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는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할렐루야 !!~~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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