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혼자 지지 않게 하시는 주님


본문: 마태복음 11:28-30

인생의 무거운 배낭, 어린아이처럼 인정하며 나아가기

우리가 긴 여행을 떠날 때, 처음에는 필요할 것 같아 배낭에 짐을 가득 채워 넣지만 여행이 길어질수록 그 짐은 우리를 짓누르는 고통이 됩니다. 결국 쓸모없는 것들을 다 버리고 가장 가벼운 상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죠. 우리의 인생 여정도 이와 똑같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은 취업을 위한 '스펙'이라는 무거운 짐을 매고, 한창 삶을 일궈가는 중년들은 '가족의 생계와 책임'이라는 짐을 매며,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질병과 육신의 연약함'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됩니다. 목사님께서도 최근 갑상선 수술을 겪으시며,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져 내리는 체력 앞에서 내 인생의 짐을 다 내려놓고 싶다는 뼈저린 한계를 느끼셨다고 고백하십니다.

누구나 다 벗어버리고 싶은 이 무거운 짐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28절)"라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런데 이 은혜로운 초청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내 스스로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임을 철저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믿으며 자기 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이 은혜를 감추시고, 오직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하게 도움을 구하는 '어린아이들'에게만 이 쉼을 허락하셨습니다. 내 힘으로 내 인생의 짐을 다 지고 갈 수 없음을 깨닫고 두 손 들고 항복하는 그 부끄러움의 자리가, 사실은 하나님 안에서 가장 위대한 은혜가 시작되는 첫걸음입니다.

세상의 '성취'하는 쉼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쉼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나아오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세상이 말하는 쉼의 방식과 예수님이 주시는 쉼의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은 "네가 조금만 더 버티고 노력해서 완벽한 조건을 성취해 내면, 그때 비로소 쉴 수 있다"라며 조건부의 쉼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스스로 쉼을 얻어내고 성취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참된 쉼의 주체는 '나'가 아니라 '예수님'이시며, 쉼은 내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은혜로 '받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자꾸 내 눈앞에 놓인 당장의 척박한 상황과 꼬여있는 환경이 해결되어야만 쉴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은 한 번 해결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환경이 바뀌어서 얻어지는 일시적인 평안이 아닙니다. 모든 요동치는 상황 속에서도 나의 나그네 된 인생을 온전히 책임지시는 예수님 품 안에서 누리는, 완전하고 근본적인 쉼입니다. 당장의 문제 해결만을 구하는 기도를 넘어, 주님이 주시는 이 '참된 쉼' 자체가 내 영혼에 온전히 임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성품을 배우는 삶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쉼을 주시겠다 약속하시면서, 아주 독특한 두 가지 처방을 내리십니다.

첫째, "내 멍에를 메라" 하십니다. 멍에는 소 두 마리를 하나로 묶어 밭을 갈게 하는 농기구입니다. 보통 멍에는 나의 자유를 빼앗는 족쇄처럼 느껴져 끔찍이 싫어하지만, 사실 이스라엘의 멍에는 힘세고 노련한 어미 소와 어리고 미숙한 새끼 소를 짝지어 매는 방식입니다. 주인이 노련한 어미 소를 몰고 가면, 새끼 소는 그저 옆에서 발맞춰 끌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즉, 예수님의 멍에를 함께 멘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도권과 무거운 결정의 책임을 내가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온전히 넘겨드린다는 뜻입니다. 인공지능(AI)의 발달 등 미래를 알 수 없어 불안한 시대 속에서도, 내 인생을 홀로 개척하려는 고집을 꺾고 예수님의 멍에 안으로 쏙 들어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끌려갈 때, 우리의 무거운 짐은 예수님의 짐이 되고 비로소 가벼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 "나한테 배우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문제 해결의 기술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며 당신의 '성품'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듯, 내 삶의 고난 앞에서 분노하거나 억지로 통제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툭하면 하나님과 '거래(Give and Take)'를 하려 듭니다. "내가 이것을 헌신할 테니 하나님은 저 짐을 치워주세요"라며 종의 태도로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십니다.

건강을 지키려 1년에 25억씩 쏟아부었음에도 40대에 난치병에 걸린 어느 젊은 사업가의 일화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이 땅을 떠나는 죽음의 짐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 인생의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홀로 해결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정직하게 예수님 곁으로 다가가 그분의 멍에를 함께 메십시오. 빈손으로 엎드려 주님이 주시는 쉼을 받아 누릴 때, 우리 인생의 마지막 걸음조차 두려움이 아닌 영광스러운 평안함으로 걷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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