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8:26-40
내비게이션이 없는 광야 길, 묻지 않고 걷는 순종
사마리아 성은 지금 엄청난 부흥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핍박을 피해 사마리아로 흩어졌던 빌립을 통해 복음이 선포되고, 귀신이 떠나가며, 병자들이 치유받는 놀라운 기적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두 사도의 기도로 성령이 임하며 오랜 민족적 앙숙이었던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에 거대한 화해의 역사가 쓰이고 있는, 그야말로 영적 축제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정의 순간,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나타나 뜻밖의 명령을 내립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나아가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 그 길은 광야 길이다(26절)."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가사로 향하는 길은 무려 150~160km에 달하는 멀고 험한 도보 길이며, 그곳은 생명이 살기 힘든 척박한 광야였습니다. 한창 복음의 열매가 맺히고 있는 화려한 부흥의 무대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광야로 가라는 이 명령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길을 나설 때 늘 완벽한 '내비게이션'을 원합니다. 목적지를 미리 찍어두고, 언제 어디서 좌회전을 해야 할지, 도착 시간은 언제일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예측해야만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왜 가야 하는지, 그곳에 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야만 움직이려 합니다. 하지만 빌립은 그 황당한 명령 앞에서 "왜요? 가서 무엇을 하는데요?"라고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저 "빌립은 일어나서 가다가(27절)"라고 짤막하게 기록할 뿐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그 광야 끝에 무엇이 있을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오늘 성령께서 가라 하시니 그저 묵묵히 짐을 싸서 발걸음을 옮긴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계획이 완벽하게 세워졌을 때 움직이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진짜 순종은 내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캄캄한 광야 길일지라도, 오늘 들려주신 주님의 음성에 기대어 묵묵히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광야 한가운데서 예비된 '마침'의 은혜와 자발적 신앙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광야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빌립의 마음속에도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나? 혹시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숱한 인간적인 의심이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며 걷던 그 캄캄한 길 위에서 성경은 가장 경이로운 단어 하나를 던집니다. 바로 '마침(27절)'입니다.
빌립은 광야 길에서 '마침'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있던 그는, 마차 위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 만남은 빌립이 치밀하게 계획한 것도, 내시가 의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텅 빈 광야 한가운데서 두 사람의 발걸음을 정확한 시간에 교차시키신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내비게이션 없는 길을 무작정 걷는 것 같아도, 순종의 걸음 끝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마침'의 은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마차에 바짝 다가서라"고 말씀하시자, 빌립은 즉시 달려가 내시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사야서를 읽고 있음을 듣게 됩니다. 뜻을 깨닫지 못해 답답해하던 내시에게 빌립은 입을 열어 예수님의 복음을 온전히 전합니다. 놀라운 것은 복음을 들은 내시의 반응입니다. 길을 가다 물이 있는 곳을 발견하자 내시는 스스로 "보십시오, 물이 있습니다. 내가 침례를 받는 데 무슨 거리낌이 있겠습니까?(36절)"라며 자발적으로 침례를 요청합니다.
빌립이 억지로 율법의 잣대를 들이밀며 의무를 강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진짜 능력이 심령에 부딪히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내어드린 것입니다. 신앙은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끌려가는 수동적인 의무가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복음의 감격을 맛본 자만이 가지는 가장 기쁘고 자발적인 항복입니다.
'마침내' 다다를 영광의 목적지, 천하보다 귀한 영혼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온 직후, 주의 영은 빌립을 이끌어 홀연히 다른 곳으로 데려가십니다. 내시는 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해 준 은인 빌립이 시야에서 사라졌음에도 불안해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기쁨에 차서' 자신의 고향 에티오피아를 향해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그의 마차는 이전과 똑같은 아프리카행이었지만, 이제 그 길은 사망의 길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조국에 전하는 가장 영광스러운 기쁨의 길이 되었을 것입니다.
빌립의 발걸음 역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소도를 지나 여러 성에 복음을 전하며 지나가던 빌립은 '마침내(40절)' 가이사랴에 이르게 됩니다. 가이사랴는 훗날 로마 백부장 고넬료를 통해 이방인 선교의 거대한 문이 활짝 열리게 되는 영적 전략 요충지입니다. 처음 사마리아를 떠나 광야로 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빌립은 자신의 최종 목적지가 이방 선교의 심장부인 '가이사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명령 앞에 순종하여 '마침' 예비된 영혼을 만났고, 그 순종이 겹겹이 쌓여 '마침내'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 위대한 자리에 당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일상의 작은 순종도 결코 의미 없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주 가는 단골 식당,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만남 속에도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이 숨어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발걸음이 닿았던 보말 칼국수 집 사장님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가, 그곳에서 췌장암 말기 투병 중인 또 다른 영혼을 우연히 만나 복음의 자리로 안내하게 된 우리 교회의 최근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은 결코 문학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뜨거운 진심입니다. 오늘 내 손에 인생의 완벽한 지도가 쥐어지지 않아 막막하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하루하루 묵묵히 순종의 발걸음을 떼다 보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마침'의 만남을 지나 '마침내' 한 영혼을 구원해 내는 영광스러운 목적지에 우리를 세워두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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