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9:1-9살기를 띤 확신을 멈춰 세우신 빛
스데반 집사의 끔찍한 순교 현장에서 증인으로 섰던 청년 사울은, 그 죽음을 계기로 더욱 살기를 띠며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했습니다. 그는 다마스쿠스(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자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조리 묶어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 스스로 대제사장을 찾아가 위임장을 받아낼 만큼 열정에 불타올랐습니다. 사울에게 이 일은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믿고 아는 율법의 지식 안에서 이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굳게 확신했기에, 200km가 넘는 먼 다마스쿠스까지 일주일을 꼬박 걸어가는 수고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기 전까지는 사울과 비슷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내가 세운 계획,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 세상을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에 강한 확신을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맹렬하게 달려갑니다. 그러나 멸망을 향해 폭주하던 사울의 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사울 자신의 깨달음이나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진 '환한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정반대의 길로 달려가던 그에게 예수님이 먼저 빛으로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역시 내가 먼저 하나님을 찾아 구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옳다고 굳게 믿고 폭주하던 인생길 한가운데에, 예수님이 먼저 빛으로 비추어 내 걸음을 멈춰 세워주신 은혜로운 개입 사건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두 번 부르신 음성의 비밀
땅에 엎어진 사울의 귓가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중요한 인물을 만나 친밀한 관계를 맺으실 때 늘 이름을 두 번 반복하여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모세야 모세야). 즉,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하고 부르신 것은 그를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으로 초청하시려는 놀라운 은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사울은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울은 평생 율법을 공부하여 하나님을 아주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생명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면, 내 힘으로 알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항복할 때 진짜 은혜가 시작됩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사울이 스데반을 죽이는 자리에 서 있을 때부터,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사울이라는 존재를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훗날 아나니아에게 "그는 이방 사람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다(15절)"라고 말씀하셨듯, 사울의 인생은 갑작스러운 우연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해 막막하십니까? 나를 먼저 찾아와 내 이름을 불러주신 예수님은, 내 인생을 향한 완벽한 목적과 계획을 이미 가지고 나를 이끌고 계심을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캄캄한 3일, 진짜 보게 하시는 기다림의 시간
빛을 본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기세등등하게 쳐들어가려던 계획은 완전히 무너졌고, 사람들의 손에 질질 끌려 들어가야만 하는 무기력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울이 육신의 눈으로 보고 믿고 확신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가짜였으며, 이제는 예수님이 이끄시는 대로만 가야 하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울은 3일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캄캄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1절은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라고 기록합니다. 사울은 자기 힘으로 빨리 눈을 떠서 다시 무언가를 하려고 발버둥 치지 않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기도하며 주님이 베푸실 은혜를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그 철저한 기도의 기다림 속에서 사울은 마침내 아나니아가 찾아와 안수하고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환상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계획을 세워놓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결재를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 계획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가고, 앞이 캄캄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3일의 시간'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시간은 결코 버려진 시간이 아닙니다. 내 육신의 눈이 멀고 오직 하나님의 눈으로 내 인생을 다시 보게 되는 가장 위대한 기도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먼저 믿어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시고 내 인생에 빛으로 찾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압도적인 은혜를 깨달은 자는, 나뿐만 아니라 내 곁의 이웃들 역시 하나님의 택함 받은 그릇임을 알게 됩니다. 그들의 닫힌 눈이 열려 진짜 빛이신 예수님을 보게 되기를, 나를 찾아오셨던 그 놀라운 은혜가 그들의 삶에도 임하기를 간절히 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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