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칼럼] 삼식이와 삼복이
오늘 책꽂이에서 우연히 한 권의 책을 펼쳤습니다. 기일혜 사모님의 수필집이었습니다. 책갈피가 꽂혀 있던 페이지를 열었는데,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삼식이와 삼복이.”
익숙한 단어에 웃음이 나며 읽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멈추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세 끼를 준비해야 하는 아내가 지친 마음으로 말합니다.
“아이고 힘들어… 점심은 뭐 하지?”
그때 남편이 부드럽게 말합니다.
“쉬운 걸로 하소.”
그때 남편이 부드럽게 말합니다.
“쉬운 걸로 하소.”
그 한마디에 아내의 마음이 풀립니다. 그리고 마음이 바뀝니다.
“내가 점심을 잘 차려야지.”
말 한마디가 마음을 살립니다.
세상에서는 집에 있으면서 세 끼를 챙겨 먹는 남편을 ‘삼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늙은 남편 의식주 챙기기가 불편하고 귀찮다고 늙은 아내들은 말합니다. 불편과 귀찮음 없는 편한 삶을 원합니다.
그런데 불편과 귀찮음 없는 편한 삶은 생활의 정지입니다. 생존은 끝없는 불편함, 귀찮음, 지겨움의 연속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늙은 남편은 늙은 아내에게 생존을 확인시켜 주는 존재, 복덩이가 아닌가. 삼시 세끼를 챙기면서 남편은 삼식이가 아닌 삼복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일이란 맘 먹기에 따라서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겁고 힘들어지기도 하니까.
“내가 점심을 잘 차려야지.”
말 한마디가 마음을 살립니다.
세상에서는 집에 있으면서 세 끼를 챙겨 먹는 남편을 ‘삼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늙은 남편 의식주 챙기기가 불편하고 귀찮다고 늙은 아내들은 말합니다. 불편과 귀찮음 없는 편한 삶을 원합니다.
그런데 불편과 귀찮음 없는 편한 삶은 생활의 정지입니다. 생존은 끝없는 불편함, 귀찮음, 지겨움의 연속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늙은 남편은 늙은 아내에게 생존을 확인시켜 주는 존재, 복덩이가 아닌가. 삼시 세끼를 챙기면서 남편은 삼식이가 아닌 삼복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일이란 맘 먹기에 따라서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겁고 힘들어지기도 하니까.
이 글을 읽으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귀찮고 지겨운 일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사람을 섬기는 반복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살아갑니다.
저희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릴 때가 사람 사는 것 같았다.”
그때는 참 바빴고, 힘들었고, 해야 할 일이 끝이 없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하십니다. 왜일까요? 그 시간 속에 자신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돌보고, 누군가와 함께하고,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던 시간.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삼식이’는 무엇입니까? 혹시 그것을 귀찮음과 부담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짐이 아니라 너의 삶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부담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흔적이다.”
그래서 오늘 조금만 시선을 바꿔 보면 좋겠습니다. 삼식이가 아니라 삼복이로. 부담이 아니라 은혜로. 지겨움이 아니라 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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